
건축학개론 (이용주 감독, 2012년) ★★★☆
모든 첫사랑이 그렇듯 남자들은 입이 귀에 걸린채 상대방을 바라보면서 혼자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사소한 오해 혹은 스스로의 한계로 맥없이 끝내 버린다. 영화는 그 첫사랑이 15년만에 다시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과거에 대한 두사람의 서로 다른 기억이 만나는 순간 그것은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 같은 감정으로 되살아난다. 물론 그것은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아니다. 누구나 드라마틱한 전개를 기대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할, ‘끝’이라는 단어를 쓰고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것에 더 가깝다. 같은 순간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시간은 그렇게 어른이 될 수록 점점 더 벌어진다. 잔인하게도.

내 아내의 모든 것 (민동규 감독, 2012년) ★★★★
그녀는 피곤하다. 아니 ‘피곤하게’ 한다.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으며 ‘늙어죽을 내내’ 따지고 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면서 진저리를 낸다. 소통은 일방적이고 감정의 앙금은 점점 더 쌓여간다. 해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비록 의도는 불순했지만) 일자리를 마련해 주자 아내는 순식간의 매력녀로 변신한다. 그녀는 잉여인간이었던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외로움을 불평으로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아내의 잔소리와 불평이 ‘외로움’ 때문이라며 더 들어주고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의미있는 충고다. 그러나 (여자친구와 와이프에게) ‘반성의 계기’를 기대하며 손 꼭 붙잡고 영화관을 찾았던 남자들에게는 다소 싱겁고 만족하기 힘든 결론인 것도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모든 것은 변한다. 첫사랑의 저 풋풋한 시선은 삐딱해지고 스킨쉽과 함께 하는 눈맞춤은 (때때로 흉기를 동원한) 위협과 협박으로 바뀐다. 여전히 삶은 쉽지 않고 항상 달콤하지도 않지만 그 때문에 오늘, 지금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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