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암스트롱(Neil Alden Armstrong). 달에 처음 발을 디딘 인간, 더 정확히는 미국인. 영화 <퍼스트맨>은 닐 암스트롱 인생의 가장 빛나던 순간을 보여준다.
소련과의 기술 경쟁, 국내 여론의 반대, 흔들리는 가정, 잇단 동료의 죽음으로 인한 심리적 혼란 같은 것을 극복하고 달에 첫 발을 디딘다. “한 인간에겐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겐 위대한 도약”이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2시간이 넘는 이 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점은 우주를 동경하는 기존 영화와 다른 식의 접근법이다.
우리는 이미 <인터스텔라>를 통해 시간을 초월한 우주의 방대함을 경험했고, <그래비티>를 통해 숨막힐듯한 우주 공간의 두려움을 봤다. <퍼스트맨>은 우주 공간을 보여주는 대신 지구의 중력을 돌파하는 과정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아날로그식 비행 연습과 보기에도 엉성한 우주선 조립상태, 쉴새 없이 흔들리는 화면을 보고 있으면 1950~1960년대 미소 우주 냉전 시대의 기술이 얼마나 조악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우주 비행사의 어이없는 희생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화면 좀 그만 흔들라’는 불만(?)이 있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그 당시 최선의 기술이었을 것이고 동시에 기존 영화에서 재현하지 못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미국이 이 어려움과 희생을 넘어, 소련까지 제치고 기어이 달에 먼저 발을 내딯는 위대한 국가가 됐다는 주장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닐 암스트롱의 심리 묘사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지만 안타깝게도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그가 사선을 넘나드는 테스트를 거쳐왔고 딸과 동료의 죽음을 가슴에 품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달 탐사에 집착하거나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혹은 가족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달에 발자국을 찍고 돌아온 닐은 그동안 불안하게 결혼생활을 이어왔던 아내와 재회한다. 그들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어렵게 손을 뻗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느낄 수 있는 여운이 별로 없었다.
대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것이었다. <라라랜드>로 아카데미상 6개를 받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미국에 보답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영광을 주신 위대한 미국 사회에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는 생각. 그만큼 영화 곳곳에 미국 중심 주의가 배치돼 있고 이를 상쇄할 드라마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불친절하다. 드라마가 그의 장기라는 것을 증명한 것을 고려하면 더 안타까운 대목이다. <라라랜드>의 매혹적인 인물 묘사가 곁들여진 흥미진진한 우주 스토리를 기대하고 극장에 간다면 십중팔구 실망할 수 밖에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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