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만 가볼 만한 길 윈도우 탈출

지난 5월경 생활  패턴이 완전히 바뀌는 상황이 되면서 예전부터 마음만 먹고 있었던 ‘윈도우 탈출’을 시도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초부터 쓰기 시작한 맥북 에어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이제는 윈도우로 할 수 있는 것과 맥 OS X으로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됐고 이 정도면 다소 불편하더라도 전환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만큼의 여유도 있었고 시행착오에에 대한 각오(?)도 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생각보다 불편하지는 않다. 그러나 역시 불편하다. 우리나라의 웹 환경이 여전히 폐쇄적인 것을 느끼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진정한 저력(?)도 다시 느끼게 된다.  

출발점 : 윈도우를 버릴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윈도우 플랫폼 자체를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단계 한단계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먼저 맥북 에어에 패러럴즈(parallels)를 설치해 맥 OS X과 윈도우7 환경을 동시에 구축했다. 급한 일이 있을 때 윈도우에서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이건 정말 낭패일 테니까. 맥북 에어에서 패러럴즈로 윈도우7을 실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속도가 괜찮았다. 맥북 에어의 SSD 때문이겠지만 노트북에서 이 정도의 속도로 윈도우7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냥 병행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윈도우7은 패러럴즈 가상화 기술로 맥북 에어의 모든 리소스를 공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무거운 동영상을 돌린다거나 하는 것은 아무래도 버벅된다.  

윈도우 시스템과 맥 시스템 간의 파일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윈도우 시스템을 많이 쓰지 않는다고 해도 주요 데이터는 맥에 있기 때문에 윈도우를 켜는 순간 맥의 데이터가 필요해지는 경우가 많다. 패러럴즈의 맥 디스크 공유 기능을 이용하면 된다. 맥에서는 윈도우의 기본 파일 시스템인 NTFS를 사용하지 못한다. 이럴 때 TEXERA NTFS 같은 툴을 쓰면 NTFS로 포맷한 USB 디스크나 외장형 하드디스크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맥 시스템은 한영키 전환이 좀 다른데 이런 경우 KEYREMAP을 사용하면 된다.  

  • 사용 애플리케이션 : 패러럴즈, texera ntfs, keyremap4, cleanmymac, hyperdock
  • 애플리케이션 사용법 도움 얻는 곳 : 네이버 ‘맥 쓰는 사람들‘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part 1. 업무용

하지만 우리가 PC나 랩톱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애플리케이션 때문이다. 노트북은 무엇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그 자체로 필요한 것이 아니다. 현재 직장에서 윈도우용 전용 프로그램을 쓰고 있다면 이건 정말 답이 없다. 윈도우가 설치되지 않은 노트북은 그대로 아웃이고 패러럴즈로 사용하기 때문에 업무 프로그램 자체가 무겁다면 역시 현실적으로 윈도우 플랫폼을 버릴 수가 없다. 난 다행히도 이전 직장은 윈도우 전용 프로그램을 썼지만 지금은 아니다. 따라서 이제는 윈도우를 버리는 것이 ‘틀려 버린’ 것이 아니라 ‘다른’ 소프트웨어를 찾으면 되는 것이다.  

MS의 대표적인 업무용 프로그램인 오피스. 맥에도 있다. 바로 i워크(iwork)다. MS워드는 페이지(Pages), MS 파워포인트는 키노트(Keynotes), MS 엑셀은 넘버스(Numbers)로 각각 대응된다. 각각 기본적인 호환은 되고 키노트의 경우 파워포인트보다 결과물이 더 있어보인다. (아마도 잡스의 영향인 것 같다. 프레젠테이션은 툴 보다는 결국 콘텐츠의 싸움이다. 그래도 키노트는 파워포인트보다 덜 익숙한, 더 낯선 템플릿을 사용하기 때문에 있어 보이는 것인 것 같다)  

페이지의 경우 한글판의 문제인지 내 시스템의 문제인지 문서 분량이 많아지면 느려지는 버그가 있다. 자동저장 옵션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던데 자주 저장하면서 쓰고 있다. 이렇게 쓰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역시 다른 회사와 주고받는 공식문서의 경우 역시 오피스를 버릴 수가 없다. 이럴 땐 MAC용 MS 오피스도 하나의 대안이다. 꼭 필요한 경우라면 잠시 쓸 수 있다. 일상적으로 쓰기엔 일찌감치 기대를 접는 것이 좋다. 패키지 구성도 원노트를 비롯한 유용한 프로그램들이 없고 아웃룩의 경우도 윈도우용에서 지원하는 기능이 대거 빠져 있다. 느려지는 버그를 참고 페이지를 쓰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최근엔 오피스 프로그램들이 클라우드 서비스로 변화하고 있고 여러 브라우저를 지원하는 추세이므로 언젠가는 불편없이 쓸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못 쓸 정도가 아니므로 키노트를 필두로 한 새로운 i워크를 접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 사용 애플리케이션 : iwork, 한컴오피스 뷰어

애플리케이션 part 2. 금융

윈도우 탈출의 가장 어려운 복병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금융이다. 우리나라의 은행 웹사이트의 액티브X는 그만큼 악명 높다. 그래도 점점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특히 스마트폰 혁명(?)은 이럴 때 도움이 된다. 일단 MAC 플랫폼을 지원하는 금융사는 하나은행, 신한은행 등이다. 맥북으로도 충분히 은행업무를 볼 수 있다. 다른 은행은 PC용 홈페이지는 지원하지 않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한 뱅킹은 지원한다. 외환은행, 새마을금고 등이 대표적이다. 둘을 이용하면 대부분의 은행 업무를 맥 OS X에서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카드사들과 인터넷 쇼핑이다. 쇼핑몰들은 그렇다고 쳐도 카드사들이 액티브X 투성이 웹을 만드는 것은 정말 문제가 있다. 심지어 맥에서는 e메일로 온 명세서도 볼 수 없다. 카드사들이 그나마 스마트폰앱을 제공하니 관련 정보를 볼 수 있지만 손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당연히 이들 사이트들은 점점 사용하지 않게 된다.  

애플리케이션 part 3. 엔터테인먼트

엔터테인먼트 쪽은 사실상 제한이 없다. 대체할 만한 프로그램이 대부분 있고 일부 애플리케이션은 오히려 맥용이 훨씬 직관적이고 성능도 좋다. 동영상 플레이어, P2P 프로그램, 메신저 프로그램 등은 대부분 맥용으로 나와있고 1PASSWORD 같은 패스워드 관리 프로그램 등을 보면 역시 맥용 애플리케이션들이 윈도우용 대비 인터페이스가 참 미려하다. 특히 i포토같은 프로그램은 맥용 전용 프로그램인데 사진관리가 아주 편리하다. 얼굴인식(사진을 얼굴에 따라 자동으로 구분해준다) 같은 독특한 기능도 있는데 매우 유용하다. 내가 쓰는 애플리케이션 목록은 다음과 같다.  

무비스트, 1password, filezilla, utorrent, unarchiver, seashore, n드라이브

복병 : 원노트와 아웃룩

순조롭거나 혹은 일부 불편을 무릅쓰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의외의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원노트와 아웃룩, 아니 RSS 리더였다.   사람들을 만나 메모할 일이 많은 내게 원노트는 그동안 나의 소중한 동반자였다. 일괄 검색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토픽 혹은 사람 이름만으로도 그 사람과의 대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원노트에는 텍스트는 물론 이미지, 보이스, 동영상, 웹 자료를 자유롭게 COPY&PASTE 할 수 있어 매우 강력한 서류철 역할을 한다. 특히 오피스 제품과의 호환도 뛰어나 서로 데이터를 붙인다거나 링크를 서로 연결한다거나 하면 원노트를 중심으로 효율적인 개인 업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맥에도 원노트와 비슷한 소프트웨어들이 있다. 단순한 메모장에서부터 온라인 서비스까지 지원하는 것까지 다양하게 보다가 실망하고 다시 원노트로 돌아가기를 몇번 반복하다가 결국 맥용 에버노트(evernote)에 정착했다(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원노트 대비 불편한 것들이 있다.  일부 에버노트에 복사해 붙일 수 없는 데이터들이 있고 문단이나 글꼴 설정 기능이 너무 약하다. html 태그로 치면 <b>와 <p>를 구분하는 것이 대중이 없어서 이를 일일이 수정하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냥 마구 적어놓으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결국 데이터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을 때 훨씬 더 가치를 갖는다. 원노트를 사용할 때도 추후에 한번더 정리해 놓으면 나중에 훨씬 찾기도 좋고 이해하기도 좋다.  

특히 기존의 원노트 데이터를 에버노트로 옮기는 것은 여전히 남아 있는 숙제다. 일단 데이터는 잘 보관해 놨으니 언젠가는 깔끔하게 마이그레이션 할 수 있는 날이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   RSS 리더는 생각지도 못했던 허점이었다. 지금도 RSS 리더 때문에 윈도우를 종종 부팅하곤 한다. 어이없겠지만 사실이다. RSS는 가장 능동적인 콘텐츠 소비 방식이다. 특히 언론사를 넘나들면서 자유롭게 자료를 모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문제는 너무 많다는 것이다. 언론사만 좁혀 봐도 인터넷 언론사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나면서 토씨 정도만 다른 같은 기사들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따라서 RSS의 기본은 언론사에 따라 혹은 특정 단어를 기준으로 필터링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RSS 리스트만 보고도 질려서 기사 읽기를 포기하게 된다.  

이 때문에 아웃룩의 RSS 리더 기능은 정말 파워풀했다. 규칙으로 특정 언론사 RSS는 자동으로 걸려내도록 하면 내가 선호하고 양질의 기사를 생산하는 언론사의 RSS만 추려서 볼 수 있다. 아웃룩은 개별 RSS를 일종의 메시지로 인식하기 때문에 삭제하는 것도 매우 편하다. 마지막까지 남은 RSS 기사 리스트는 원노트 등에 붙여 놓고 있다가 나중에 다시 읽고 참고할 수 있다. 적어도 윈도우 플랫폼에서는 아웃룩만큼 강력한 RSS 리더기는 없다.  

유명하다는 맥용 RSS 리더를 다 살펴봤지만 필터링 기능이 없다. 정말 없다. 심지어 개별 RSS를 삭제하는 기능도 없다. 구글 리더를 통해 끌어오는 부분도 고려해 봤는데 역시 필터링에서 막혔다. 결국 지금도 RSS 확인을 위해 윈도우를 켠다. 언론사별 필터링이 가능하고 개별 RSS를 손쉽게 삭제할 수 있는 맥용 RSS 리더기를 아시는 분들은 플리즈 렛 미 노우!  

결론 : 해볼 만한 도전

윈도우에서 탈출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무엇보다 정서적인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운영체제의 안정성, 인터페이스의 편리함 따위를 이야기 하기 전의 문제인 것이다. 예를 들면 사파리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만 봐도 서로 화면에 보여지는 부분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다르다’가 ‘틀리다’의 다른 말이다. 여기에 인터넷 뱅킹과 같은 사소한 불편함이 겹쳐지면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당연한 전개다.  

하지만 윈도우 탈출(시도?) 6개월. 장점도 많았다. 앞서 언급한 운영체제의 안정성은 윈도우와 차별화되고 잘 정돈된 인터페이스도 만족스럽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 애플 기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아이클라우드를 통한 데이터 연동도 비교할 수 없는 장점으로 다가온다. 에버노트 데이터를 지하철에서 보고 수정한다거나(일종의 3스크린) 메일 프로그램과 휴대폰이 주소록을 공유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실제 이 환경에 푹 빠지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MS가 최근 클라우드 데이터 연동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데 속도와 안정성 측면에서 아직 갈길이 멀다. MS는 MS인 것이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일탈의 쾌감도 있다. 결국 인생은 관성과 파격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역사의 기록이다. 그리고 관성에 젖는 순간 이성은 정지되고 사고는 마비된다. 맥 환경에서 매끄럽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왜 윈도우 플랫폼에서는 지금까지 구현하지 못했을까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파열음이 결국은 기술이 아니라 삶(!)의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휴대폰으로 텍스트 중심의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그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던 몇년전만 상상해보라. 애플 아이폰의 출시는 아이폰의 완성도와 별개로 우리의 통신시장을 소비자 중심으로 바꿔놓았다)  

혹시라도 윈도우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면 ‘해볼 만하다’라는 것이 나의 마지막 결론이다. 패러럴즈라는 두 시스템 간의 가교도 있으니 용감하게 도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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