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불안 권하는 TV 속 보험 광고들

© Flickr/Robert Couse-Baker

김 부장 그렇게 갈 줄 어떻게 알았어.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한대?
차 사고 나면 당신 돈 있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요즘 케이블 TV만 틀면 보험광고가 무한반복된다. 종신보험, 자동차보험 등 종류도 많고 온통 자극적인 설정과 저주 섞인 코멘트 때문에 불쾌해진다. “바보아니면 10% 환급받아야지~”하는 대리운전 광고 만큼이나 마음이 불편하다. (왜 여긴 국민캐릭터 둘리가 등장하는 것일까. 내가 둘리와 척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 광고다!)   이런 광고가 불편한 것은 너무 자주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이 한 이유지만 무엇보다 공공연하게 불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버린 김 부장에 대해 수근거리는 직원들에게서는 동료애나 애도의 느낌은 전혀 읽히지 않고 ‘당신 돈 있냐’며 면박을 주는 남편에겐 아내 걱정보다는 돈 나갈 걱정이 앞서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설정들은 영악한 상술이다. 그렇게 남편 김 부장을 잃고 나면 직장 동료는 물론 주변 누구도 도움이 되지 못하니 얼른 전화를 걸어 종신보험, 암보험 가입하라는 것이고 심하다 싶은 면박을 전면에 내세운 자동차보험 광고는 소심한 대한민국 장농면허 주부와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의 불안심리를 건드려 보험 하나 더 들도록 떠미는 것이다. 기획의도(?)를 잘 살린 것은 분명하나 뒷맛은 영 씁쓸하다.

이런 광고가 거슬리는 또다른 이유는 불안감을 이용한 상술이라는 점이다. 가장을 잃어 생계가 막막하거나 끔찍한 사고에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극단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지옥같은 상황을 대비하라’고 유혹하는 것이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지옥에 떨어질 수 있으니 마음을 고쳐먹고 대비하라. 왠지 익숙한 메시지 아닌가. 그렇다. 지하철에서 나무로 만든 간이 십자가를 어깨에 매고 ‘불신지옥 예수천당’을 외치던 그 포교(?)활동과 매우 흡사하다. 실제로 공포를 파는 이들 광고는 사후세계에 대한 경고를 설파하는 종교와 닮은 구석이 많다. (종교는 (최소한) ‘자기위안’이라는 유효한 가치를 제공하지만 보험광고는 제공하는 것은 ‘주로’ 자동이체 청구서다!)

선진국의 경우 보험광고가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의약품 광고가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모든 제약사들이 수백가지 약을 내놓고 이걸 미리 먹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경고를 쏟아내는 TV를 상상해 보라. 이게 얼마나 끔찍한가. 반면 우리나라는 보험사들이 악질적인 공포마케팅을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활용하도록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 준비를 부풀려진 불안감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러한 불안의 상당부분은 오히려 국가의 역할에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가장의 부재나 사고에 따른 수습은 상당부분 사회안전망과 적절한 손해배상 제도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많은 보험광고들은 공공의 노력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더 촘촘하게 만드는 대신 사회를 불신하고 개인적인 대비에 몰두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더 우려스럽다. (당연하겠지만 사회안전망이 촘촘해 질수록 보험사들의 사업영역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들이 ‘불안’을 파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눈 앞의 돈을 벌기 위해 장기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기도 하다.)

불안을 파는 것은 곧 공동체에 대한 불신을 전파하고 개선에 대한 의지마저 꺾는 행위다. 그 결과와 책임은 불안 마케팅으로 재미를 보는 그 기업들의 구성원들과 가족들도 똑같이 분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남의 불안을 이용해) 개처럼 벌어서’ 다시 ‘(자신의 불안 해소를 위해) 개처럼 쓰는’ 것을 수도 있다.   PS. 거슬리는 광고들 때문에 나는 종종 TV의 ‘무음’ 기능을 이용한다. 광고 시간이 되면 무음으로 해 놓고 다른 일을 하다가 광고가 끝나면 다시 음성을 활성화시킨다. XTM과 같은 일부 케이블 채널의 경우 방송이 재개되는 시간, 즉 광고가 끝나는 시간을 오른쪽 상단에 표시해 준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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