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버 1500대 성능 '메인프레임'으로도 안되는 공평과세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생 내는 세금이 1인당 평균 5억원 가량 된다고 한다. 이 엄청난 세금 징수에는 고성능 서버 1500대와 맞먹는 성능을 갖고 있고 1년 유지비만 수백억원에 달하는 ‘IBM 메인프레임’이라는 고가의 IT 시스템이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장비를 갖고도 ‘소득에 따른 세금’이라는 공평과세의 원칙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고 있다. 금융정보와 부동산정보, 심지어 개인의 신용카드 정보까지 모두 전산화돼 있는 상황에서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와 세금없는 부의 대물림이 공존하는 것은 언듯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첨단 IT 기술이 대다수의 납세자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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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만 제대로 내는 세금?

현재 사람들이 내는 세금은 국세와 지방세 등 30여가지에 달한다. 직장인들은 월급을 받기 전 세금을 떼고 받고 기업과 법인은 일정 기간 단위로 소득을 합산해 납부한다. 세금은 일상생활에서 소비하는 과정에도 포함돼 있다.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 부가가치세 10%를 포함한 가격을 지불하고 있고 자동차 기름은 절반 가량이 세금이다. 이렇게 모여진 세금은 2011년 정부예산안 기준 212조원, 국내총생산(GDP)의 19.2%에 해당한다. 여기에 의료보험, 국민연금 등을 포함하면 277조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국민 1인당 평생동안 내는 세금이 5억원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렇게 모여진 엄청난 액수의 돈은 도로와 공항 등 사회 인프라를 구축, 유지하는데 사용되고 또 취약계층 지원 등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을 유지하는데 사용된다. 아이들을 위한 무상급식과 청년인턴 사업, 실직자 지원, 신기술 개발 등 미래를 위한 선투자에도 사용된다. 당장은 내는 금액이 눈에 보이지만 현재의 우리 삶은 물론 향후 우리 사회의 미래를 더 튼튼히하는 분야에 분배돼 투입되는 것이 세금이다.  

그러나 이런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세금에 대해 갖고 있는 정서는 그리 우호적이지 못하다. ‘당연히 내야 하는 것’, ‘기꺼이 낼 수 있는 것’이기 보다는 ‘방법이 있다면 가능한 한 내지 않은 것’에 더 가깝다. 왜 그럴까. 이러한 정서의 바탕에는 무엇보다 조세 형평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자리잡고 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소득에 따라 세금을 부과한다’는 조세 정책의 대명제가 과연 우리 사회에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과도한 부의 집중을 막고 계층간 빈부격차를 줄이는 기능 등이 조세정책을 통해 충분히 작동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여전히 불신의 시선이 더 많다.  

자본과 기술의 집약체인 국세행정 시스템

국내에서 세금 징수를 총괄하는 기구는 국세청이다. 지난해 국세청을 통해 걷어들인 세금만 190조원이 넘는다. 국세청은 이처럼 세금을 걷는 행정에 첨단 IT 기술을 총동원해 활용하고 있다. 세무행정을 위해 국세통합시스템 TIS, Tax Integrated System, 국세정보관리시스템 TIMS, 조사정보시스템 등 10가지 핵심 내부업무시스템과 전자문서시스템, 지식관리시스템, 사이버 교육시스템 등 6가지 기타 업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고 홈택스 Home Tax Service, 현금영수증 시스템, 연말정산 시스템 등 사람들이 평소에 흔히 쓰는 납세지원 서비스를 위해 별도로 9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e사람 등 정부공통업무 시스템과 IT업무관리포탈 등 정보화 업무지원 시스템까지 포함하면 총 34개에 달한다. 이들 시스템은 460여대의 서버와 820여종의 소프트웨어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 방대한 시스템의 핵심은 단연 TIS다. 지난 1996년 603억원이 투입돼 개발 됐으며 당시 전국 지역 세무서별 조세업무를 온라인으로 통합해 국내 조세행정 전반의 큰 변화를 몰고 왔다. 현재 TIS에는 행안부, 국토부, 관세청, 한국은행 등의 시스템과 연결돼 있어 각종 과세 정보를 주고받고 있고 또 대외적으로는 홈텍스, 현금영수증, 연말정산 등의 시스템을 통해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한다. TIS를 중심으로 한 국세청 시스템에는 국민의 조세정보가 총망라돼 집중돼 있다.

국세청의 IT시스템은 하드웨어 측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 국세청은 국내에서 공공기관 가운데 IBM 메인프레임을 사용하는 얼마 안되는 기관으로 꼽힌다. ‘z시리즈’라는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는 이 제품은 흔히 일반인들 사이에서 고성능 컴퓨터라고 알려진 x86 서버를 1500여대 합친 것과 맞먹는 성능을 제공한다. 메인프레임은 IBM이 지난 50년 이상 최적화시켜 온 제품이어서 성능과 안정성, 보안은 업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카드회사와 은행, 글로벌 대기업, 정부 등이 메인프레임을 여전히 사용하는 것도 괴물같은 성능 때문이다.

메인프레임은 그 성능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다. z시리즈는 구매 고객의 필요에 따라 맞춤 제작하기 때문에 정가 개념이 분명치 않지만 일반적으로 수십억원대, 최대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IBM이 초저가 메인프레임을 표방하고 내놓은 신제품 가격이 7만5000달러(약 8700만원)부터 시작하는 것이었으니 얼마나 고가의 장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특히 메인프레임은 한번 구입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단위로 갱신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판매된다. IBM이 독점 개발하는 만큼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메인프레임을 유지하는 데만 초기 구입 비용의 10~20% 가량을 매년 비루해야 한다. PC를 100만원에 사고 이를 정상적으로 사용하기 이후 매년 20만원씩 더 내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실제로 국세청이 시스템 운영을 위해 IBM과 같은 업체에 지불한 비용만 2010년 기준 255억원. 한국개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현행 메인프레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시스템을 추가로 증설, 추가할 경우 전체 유지보수 비용이 연간 485억원, 5년 단위로 장비를 증설하는 해에는 무려 1117억원이 유지보수 비용으로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비용 모두가 메인프레임을 유지하는 비용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국세청이 기술과 자본이 집약된 IT 기술을 활용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괴물 시스템도 공평과세 앞에선 무용지물?

그러나 서버 1500대 성능과 맞먹는 이 시스템이 조세형평성을 실현하는데는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좀 오래된 통계지만 2002년 기준 국세통계자료에 따르면 348만 자영업자 중 46%만 세금을 냈다. 54%는 연소득 460만원, 월소득 38만원 이하라고 신고해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았다. 지난 2005년부터 현금영수증이 발행되면서 탈루 세원을 추적하는 작업이 강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월급을 원천징세하는 일반 직장인이 느끼는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조세 형평성의 문제는 단순히 자영업자와 월급쟁이의 차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외환위기 이후 2008년 중반까지 수도권 집값은 몇배 올랐는데 이들 거래의 양도차액을 1억원씩만 잡아도 약 300조원 이상의 부동산 소득에 대한 세금이 사실상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IT 시스템들은 하고 있는 역할이다. IT 시스템이 조세행정이 도입되면서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세무행정이 온라인화되면서 방대한 세무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할 수 있게 됐고 HTS 시행으로 세금 신고가 간편해지고 국세청도 내부적으로 단순 업무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면서 정책연구와 세원 발굴 등 세무행정을 강화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됐다. 과거 권력기관, 비리기관 이미지가 강했던 국세청이 서비스 기관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도 업무 전산화를 통해 비리의 근본원인이었던 지역별 담당자 제도를 폐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국세 관련 IT 시스템의 변화는 대부분 징수 업무에 초점을 맞춰왔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세금을 걷고 내는 업무’를 자동화하고 더 편리하게 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탈세 적발과 조세형평성 강화라는 세금의 대전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현재 국세청이 추진하고 있는 차세대 TIS 구축사업 계획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조짐이다. 국세청이 공개한 기본계획에 따르면 2015년까지 2300여억원을 투입하는 이번 사업을 통해 과세자료의 품질을 높이고 고객 중심의 납세 서비스를 강화하고 국세청 업무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시스템 측면에서는 성능은 좋지만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현재의 메인프레임을 더 저렴한 서버로 교체하는 이른바 다운사이징 Downsizing 이 가장 큰 변화로 꼽힌다.

국세청은 발표 내용에는 과세 데이터베이스의 품질을 개선해 세원분석을 강화하고 비정형 조사분석 기법을 개발해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를 차단하고 세금없는 대물림을 방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정작 최종 확정된 세부 분야별 사업예산을 보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구입, 개발 등 인프라 부분이 826억원, 업무 개선이 664억원, 납세 서비스 개선이 324억원 등이고 탈세자를 찾기 위해 숨은 세원을 추적하는 과세자료 품질 개선 사업 부문은 237억원으로 가장 적은 예산이 투입된다. 이 가운데 탈세혐의 분석시스템에 투입되는 비용은 140억원 수준이 그칠 전망이다.

물론 마스터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다운사이징을 통해 타기관 시스템과의 연동을 강화한 것은 넓게 보면 장기적으로 조세형평성을 구현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업의 핵심이 여전히 납부 편의성을 높이고 국세청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는 것은 예산 배분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국세청 IT 부문 담당자의 언론 인터뷰를 봐도 국세청의 현안과제로 납세서비스와 내부업무 효율화, 숨은 세원 발굴, 보안 등을 4가지를 제시하고 있지만 납세서비스와 TIS 개선을 중점 추진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메인프레임을 이용한 조세행정 방식을 고려했을 때 이번 차세대 TIS 구축 사업계획에 조세형평에 대한 일반인의 정서가 얼마나 반영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인 셈이다.

세금, 역사의 변곡점마다 변화의 계기를 제공

본래 세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장면들마다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 왔다. 사회는 계속 발전하고 있고 이에 따라 계층 간의 갈등이 쌓여 표면화되는 것이 흔히 혁명 혹은 전쟁의 형태를 띠게 됐는데 그 순간들마다 가장 민감하고 첨예한 차이가 바로 세금 문제에서 촉발됐다.

대표적인 것이 군주제의 종말을 선언하고 인권과 민주주의, 자연권 등의 개념을 현실화한 프랑스혁명이다. 프랑스 혁명의 배경에는 국왕의 폭정, 귀족과 카톨릭교회의 권력 독점, 전쟁 참전비용 증가, 생필품 인플레이션 등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쳤지만 세금 문제가 사실상 방아쇠 역할을 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는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한 성직자와 귀족이 권력을 독점하는 대신 98%에 해당하는 평민들은 막대한 세금을 부담해야 했다. 더구나 지역별로 세금 관련 통일된 기준도 없었다. 북부와 중부가 상대적으로 더 무거웠고 특히 파리의 세금부담이 컸다. 이런 가운데 왕실의 사치로 국가재정이 파탄에 이르자 평민들의 세금을 더 올리는 방안이 추진됐고 결국 빵값 폭등을 계기로 폭동이 발생해 혁명으로 발전하게 된다. 당시 혁명을 통해 제정된 헌법은 모든 시민은 법앞에 평등하며 세금은 시민들의 지급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부과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19세기 중반 인류 인권사의 또다른 획을 그은 미국 남북전쟁도 세금문제가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시 남부와 북부의 갈등이 첨예하게 맞선 것은 유럽 상품에 대한 관세. 미국은 북부가 산업화, 도시화돼 공업이 발전한 반면 남부는 노예 노동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 농업이 산업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링컨은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유럽 수입 공산품에 대해 47%라는 기록적인 관세를 부과했는데 이는 남부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농작물을 수출해 돈을 벌는 남부는 유럽과 북부의 공산품을 본래 가격보다 두배 가까이 더 내고 사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금으로 걷힌 비용을 정부가 운영되면서 결국 남부의 돈으로 북부를 지원한다는 불만이 커진 것이다.

본래 링컨은 노예해방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1860년 대통령 취임연설에서도 노예해방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북부 공업자본가에 대한 보답으로 공산품에 대한 높은 관세 부과를 승인했고 결국 남북전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부에서는 당시 남부의 흑인 노예가 북부의 공장 노동자나 서부 인디언보다 좋은 대접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링컨은 전쟁 초기 잇달아 패배를 하자 전략적인 카드로 노예해방을 활용했고 결국 전쟁에 승리하면서 남북전쟁의 중요한 명분으로 포장돼 널리 인용되게 된다.

세금이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반인 1920년대 마피아와의 전쟁이다. 당시 미국에 금주법이 발표되면서 범죄조직이 밀주 거래에 손을 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당시 가장 악명높은 갱 두목은 우리가 익힐 알고 있는 ‘알 카포네’였다. 미국 정부는 시카고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그를 기소하기 위해 방대한 증거를 수집했지만 살인과 공갈 같은 범죄는 보복을 우려해 증인을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대신 미국 정부는 끈질긴 추적 끝에 알 카포네의 밀주거래 장부를 입수해 소득세법 위반으로 기소, 징역 10년, 벌금 5만달러를 매겨 처벌했다. 이후 다른 폭력조직들도 탈세 혐의로 줄줄이 처벌을 받았고 이를 지켜본 다른 사업주들은 스스로 세금을 납부하기도 했다.

악명높은 범죄조직을 탈세혐의로 처벌한 것은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금이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세금은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도화선이 됐을 뿐만 아니라 이후 자본주의 내의 공정한 경쟁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도 부가적으로 사용돼 온 셈이다. 서구 사회에서 탈세를 매우 부도덕한 것으로 여기고 엄하게 처벌하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인 바탕 위에서 세워진 전통인 셈이다.

보편적 복지와 증세 … 다시 시작되는 세금 논쟁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현대사의 굴곡으로 이러한 역사적인 공감대가 자리잡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세금제도가 첫 선을 보인 것은 1949년 소득세법 개정이 꼽힌다. 그러나 6·25 전쟁 발발로 본격적인 운영은 60년대부터 시작됐다. 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세금제도 운영은 국가정책에 따라 좌우됐다. 60년대의 경우 경제개발을 위한 자본축적을 위해 저축을 장려했고 소득에 대한 세금우대가 강화됐다.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달러 수입에 대한 소득세와 법인세를 절반으로 깎아주는 파격적인 혜택이 주어졌다. 70년대 들어서는 중화학공업 육성이 본격화되면서 이를 위한 조세지원책이 잇달아 나왔고 80년대는 기술개발을 비롯한 기능별 지원으로 90년에는 미국의 세제개편 영향을 받아 소득세 제도가 개편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세금제도 개편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와 미군정, 전쟁을 거치면서 서구와 같은 체계적인 세금 정책이 자리잡지 못했고 특히 군부독재 시기 산업화 전략의 하나로 세금제도가 과도하게 활용된 측면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 과정에서 세금 혜택이 특정 산업과 기업, 계층에 자의적으로 적용되다 보니 세금에 대한 일반 국민의 불신이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세금제도가 일관된 의지와 철학없이 국가정책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공평과세를 위한 소득원 발굴이 지지부진하고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를 사실상 방관하는가 하면 세금없는 부의 대물림 등 세금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을 키운 것은 가장 뼈아픈 대목으로 지목된다. 이러한 경향은 90년대 이후 조세행정에 IT 시스템들이 적극 도입된 이후에도 이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바람직한 세금 제도 논의를 위해서는 세금의 역할을 근본부터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세금은 보편적 사회 복지확대 논쟁과 함께 우리사회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수십년 성장 위주의 정책에 따라 빈부격차가 급격하게 커지면서 소외계층의 삶이 더 하락하는 가운데 급식과 교육, 의료, 고용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터져나왔고 이를 충당할 재원으로 세금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제규모와 삶의 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고려했을 때 단계적으로 준비해 시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가운데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하고 미래 세대의 짊이 될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양쪽 모두 세금이 늘려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지만 복지확대 논쟁의 이면에는 세금이 갖고 있는 또다른 기능에 대한 원론적인 입장차이가 숨어있다. 한쪽에서는 빈부격차가 계속 커지고 있는 만큼 부자에게 더 많이 세금을 걷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이른바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조하고 있고 반대편에서는 이것이 이윤추구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에 어긋난다며 ‘소득 재분배’ 기능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방만한 시장경쟁은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지난 2007년부터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의 본질은 파생금융상품을 통한 투기성 거래로 전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것이다.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도 큰 타격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금융위기를 몰고 왔던 미국 금융회사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공적자금을 수혈받는 와중에도 임직원들에게 수십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해 충격을 준 바 있다. 경쟁과 탐욕만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천박한 자본주의 맨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현재 경제시스템에 대한 재검토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더 따듯한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복지와 증세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지금 우리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가 필요한 사안인 셈이다.

소수의 기득권층이 아닌 대다수 납세자를 위한 IT시스템

다시 최초의 물음으로 돌아가보자. 첨단 IT기술들은 이러한 경제 논쟁에 대해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는 이미 충분히 가능하다. 현재 정부가 조세형평이 이뤄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내세우는 것이 소득 수준을 검증할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처럼 매달 근로소득을 신고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신고를 하기 때문에 이를 검증해야 하는데 현재 인력과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종교인에 대한 과세 자료 공개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국세청의 보유하고 있는 세금관련 정보는 매우 광범위하고 상세하다. 종교인에 대한 과세가 여전히 논쟁적인 사안이고 국세청이 관련 자료가 없다고 일관되게 부인해 온 것과 달리 TIS 등의 시스템에는 주민번호만으로 종교인만의 소득과 재산상황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공식 확인됐다. 국세청은 종교단체에 불교(94911), 기독교(94912) 등 종교별로 코드를 부여해 입력해 왔으며 비법인 종교단체도 별도로 관리했다.

일부 양보해 조세형평성을 실현하기에 여전히 정보가 부족하다는 국세청의 논리를 인정하더라도 소득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부동산 실명제가 이미 시행되고 있고 국토부 등에 관련 거래 정보와 재산세 부과자료가 이미 전산화돼 있기 때문에 이를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금융실명제를 통해 금융거래 현황을 추적할 수 있고 한국은행을 통한 외환거래 추적 등도 모두 소득을 역추적할 수 있는 자료들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카드 사용 비율은 2011년 기준 국내총생산대비 35.1%로 2위인 호주 16.8%와 두배 이상 차이가 나는 독보적인 세계 1위다. 미국에 비하면 2.5배 수준이다. 연말정산을 위해 개인별 신용카드 사용내역은 물론 교육, 의료, 보험 등 분야별 지출내역까지도 전산화한 상태여서 이들 자료를 종합하면 적어도 자영업자 절반 이상이 월소득 38만원 이하라며 세금을 한푼도 못내겠다고 주장하는 사례는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다.

다양한 과세 데이터 속에서 탈세 의심 행위와 사례를 자동으로 찾아내는 IT 기술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 국세청은 방대한 세무정보를 분석해 특정인과 기업의 탈세 가능성을 알려주는 탈세 방지 시스템을 새로 구축했다. 계좌거래 내역과 납세자 간의 연관관계, 소셜 네트워크 데이터 등을 통계적 기법으로 분석해 탈세 예상집단을 찾아내는 방식인데 LA 카운티 사회복지국에 먼저 적용한 결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지급돼야 할 복지 수당을 착복하는 사기 사례가 200건 넘게 적발됐다. 미국 국세청은 이 시스템을 통해 연간 3450억달러(약 388조원)에 달하는 탈세와 세금 환급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오랜 국세 전산화 역사를 통해 2011년 7월 기준 300억건에 달하는 자료를 축적해 놓고 있다. 국세청이 새로 구축하려고 하는 탈세혐의 분석시스템도 이 자료를 활용해 보겠다고 하는 시도로 보여진다. 특히 최근에는 인메모리 데이터베이스처럼 데이터 베이스 기술 자체가 대용량 데이터 처리에 맞춰 발전하고 있어 자료를 탈세를 잡아내는 기술들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IT 기술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지와 노력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작성한 국세청 차세대 TIS 구축 사업의 타당성 검토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

기존에는 국세정보를 통합 운영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신고가 누락되거나 서로 다른 내용으로 신고하여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으나 본 사업이 추진된다면 보다 쉽게 정보를 파악해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 공정한 조세구현이 가능해 짐. 공정과세는 정보시스템의 도입만으로 효과를 담보할 수 없고 국세청의 의지가 더욱 중요한 사항이지만 본 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조세공정성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효과가 있다고 판단됨

 시스템 도입보다 오히려 국세청의 의지를 갖고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공평과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기존의 조세정책에서 숨겨져 있는 세원을 추적하는 별도의 기구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도 내놓고 있다. 공평과세를 위한 노력과 의지, 철학을 구현할 새로운 조직을 지칭하는 것으로 뒤집어 이야기하면 기존에 국세청이 메인프레임 같은 고성능 장비로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지적인 셈이다. 만약 이런 기구가 신설된다면 활용할 수 있는 IT 기술과 수단은 이미 충분히 확보된 만큼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처럼 개인의 세금정보가 집중화되면 필연적으로 권력기구화하는 폐해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근 총리실의 불법사찰 사건이나 과거 국세청이 준 사정기관처럼 활동해 온 역사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1970년대 중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대통령이 물러난 이후 개인정보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국세청 IRS 의 세금 추적 기능을 대폭 축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지금 시점이 권력 집중을 경계해야 할 시기인가 아니면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와 자본주의의 어두운 측면을 보완하는 것이 더 중요한 가에 대한 판단일 것이다. 만약 후자라면 개인정보 집중에 따른 우려가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보완책을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검찰과 국회의원, 국세청, 고위 관료 등 권력을 누리고 있는 기관과 인사만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수사처를 두고 견제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안일 것이다.

지금까지 세금 문제로 범위를 좁혀 살펴봤지만 결국 의지와 철학이 없는 IT 시스템은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든 소수에게 혜택을 돌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메인프레임과 같은 고가의 고성능 기기도 이를 공평과세를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소수의 탈세자의 이해를 대변하고 결국 대다수 납세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기기일 뿐이다. 특히나 최근의 우리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러한 고민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역사적으로 세금 문제는 계층 간의 갈등이 쌓여 폭발한 시기에 가장 민감한 이슈로 부상하곤 했고 2012년의 대한민국은 정치와 경제 등 많은 분야에서 민주화에 역행하고 소수만을 위한 정책적인 흐름이 뚜렷히 감지되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국세청 국정감사 자료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 2011년
국세청 전산시스템 전면개편사업 예비타당성 조사보고서 한국개발연구원 2011년
프리라이더 선대인 더팩트 2010년
부자들만의 세금 덜내는 기술 62가지 원종훈 원앤원북스 2006년
정보기술과 조직개편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 : 국세청 기능별 조직개편과 TIS·HTS도입을 중심으로 최흥석, 한승주 저 2006년
세금이야기 전태영 생각의나무 2005년

 Last Updated September 01, 2012 8:44:1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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