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그 궁극의 마법 혹은 저주

슈타인즈 게이트(사토 타쿠야 감독, 일본 TV 시리즈, 2011년)와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신보 아키유키 감독, 일본 TV 시리즈, 2011년), 그리고 헐리우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워쇼스키 형제 외 감독, 미국, 2012년)다. 슈타인즈 게이트와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는 닮은 점이 많은 애니메이션이다. 2011년 비슷한 시간에 방송된 이 TV 시리즈물은 각각 전자레인지 혹은 마법의 힘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명랑 코믹물 혹은 학원물의 외피로 시작해 시간의 잔인함을 설파하는 구조도 비슷하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있음) 슈타인즈 게이트에는 과장된 언행으로 스스로를 천재 과학자로 칭하는, 그러나 전자레인지가 어떻게 타임머신 역할을 하게 된지는 설명하지 못하는 허점 투성이 주인공이 등장한다. 우연히 얻은 이 놀라운 선물은 주변 사람들의 꿈을 이뤄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여자가 되고 싶었던 남자는 임신을 한 어머니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아버지를 잃은 소녀는 사고를 피하는 편지를 과거로 보낸다. 타인의 부재가 안타까운 사람은 그 부재를 되돌리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현재는 변하고 점점 더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빠져든다.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는 ‘마법소녀’라는 수십번, 아니 수백번 반복된 일본 애니메이션의 공식을 완전히 전복시킨다. 알수없는 외계생명과의 계약을 통해 마법소녀가 된 사춘기 소녀들은 가족과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역시 미지의 악당인 ‘마녀’와 목숨을 건 싸움을 계속해 나간다. 그러나 마법소녀가 되겠다는 계약은 외계생명체의 사기였고 그들이 무찌른 마녀들은 스스로에게 절망하고 타락한 마법소녀들이었다.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마법을 갖고 있는 한 마법소녀는 소중한 친구가 이 끔찍한 마법소녀 계약을 맺지 않도록 수십번, 수백번 과거로 돌아가 그녀를 보호하지만 그럴 수록 상황은 더 처절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시간을 건널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궁극의 영역이다. 이러한 상상 속의 설정이 매력적인 것도 여전히 이것이 판타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비현실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법 혹은 설명할 수 있는 우연적 요소의 결과물이라는 설정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끔찍한 저주다. 슈타인즈 게이트의 후반부는 주인공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과거의 시간 변화를 하나하나 되돌리는 과정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하나씩 하나씩 되돌려놓아도 여전히 그녀는 죽어간다. 때로는 지하철에 치이고 차에 치이고 온갖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 반복되는 죽음을 지켜보면서 점점 그녀의 죽음에 무뎌지는 것, 이만큼 잔인한 형벌이 있을까.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에서도 이 끔직한 마법소녀 계약을 맺지 않도록 노력할 수록 소중한 친구에게는 더 많은 인과의 무게가 쌓이고 그럴 수록 외계 생명체의 유혹은 더 집요해진다. 수렁에서 빠져 나오도록 애쓸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시간의 무게에 대해 말한다. 한사람 한사람의 삶의 시간은 천차만별이지만 수백년에 걸친 환생을 통해 인과의 제로섬 상황은 계속된다. 악행과 선행, 타인을 짖밟거나 혹은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인생이 서로 뒤엉켜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 녹아든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분명 기술은 점점 더 발전할 것이고 미지의 영역은 하나씩 점점 더 규명될 것이다. 그 중에는 우리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꿀 위험한 요소도 있을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은 결국 약삭빠르면서 머리좋은 ‘헛똑똑이’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사실 개인적으로 비관론자 쪽에 더 가깝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살아갈 방향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하루하루를 버텨내기도 힘들다. 심지어 어린 학생들 조차 초중고등학교 시절은 입시에, 대학교 시절은 취업에 올인한 삶을 살고 있다. 올바른 가치관과 진정한 자존감 대신 계산만 빠른 기술자가 끊임없이 사회에 배출되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세상보다 이런 사람들 만을 길러내는 시스템이 훨씬 더 두렵다. 이런 시스템의 승자를 꿈꾸고 낙오를 두려워하는 정서가 더 확고히 퍼져 나가는 것이 안타깝다.

슈타인즈 게이트와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는 2011년 최고 화제작이었다. 실제로 이들 두 작품은 극장판까지 제작됐거나 현재 제작되고 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미국내 흥행성적이 매우 좋지 않았고 우리나라에서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배경 중 하나가 미래의 서울이어서 오히려 더 저평가되는 점도 있을 것이다. 감정이입을 하기에는 어설프게 느껴지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과 미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모두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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