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양만춘과 이세민의 지략 싸움으로 풀어냈다면 어땠을까. 역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은만큼 양만춘의 과거를 훨씬 자유롭게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 <안시성> 속에서 양만춘은 이미 완성된 지략가다. 20만 대군 적군 앞에서도 떨지 않고 가공할 무기를 하나씩 하나씩 무력화한다. 그러면서도 필요할 때는 적군을 무수히 베며 직접 해결한다(실제로 거대한 공성 무기를 기름주머니로 파괴하는 장면이 꽤 짜릿하다. 조인성이 가장 탐냈을 장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인물이 그리 설득력 있지 않다. 2시간이 넘는 영화인데도, 왜, 어떻게 성주가 됐고 그 젊은 나이에 놀라운 무예와 지식을 갖추게 됐는지 배경 설명이 전혀 없다. 그래서 마지막에 신궁을 당길 때 감동하기도, 공감하기도 어렵다. 대신 억지스러운 에피소드가 끼어든다. 기마대장의 전략은 그렇다고 해도, 신녀의 배신과 양만춘의 동생이자 기마대장의 연인인 백하부대장의 돌발행동은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렇게 중요한 인물과 시간을 소비한 영화는 곧바로 판타지의 세계로 돌진해 버린다.
<안시성>의 전투씬은 박진감 넘친다. 특히 당나라 전쟁 병기의 거대한 존재감은 기존 우리 영화에서 보기 힘든 것이었다. 음악은 감동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너무 노골적이지만 그렇다고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전형적인 오락영화의 문법을 잘 차용했다.
하지만 ‘전쟁의 신’ 이세민과 그의 20만 대군의 발목을 3개월 넘게 잡았던 ‘완성된 전략가’ 양만춘이 그리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는다. 16부작 정도의 드라마도 만들었다면 더 흥미진진했을 수도 있었을까? 이세민과 양만춘의 과거를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만춘1 (안시성주, ? ~ ?)
안시성의 성주였으며 재주와 용기가 있었다. 642년(보장왕 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연개소문에게 복종하지 않아 그 공격을 받았는데 성을 잘 지켜냈다. 644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정복하고자 군사를 일으켰다. 645년 안시성까지 진군해온 당군에 맞서 오래도록 버텨냈다.
이에 강하왕 이도종이 성의 동남방에 토산을 쌓기 시작했고, 안시성주 역시 성벽을 더욱 높이며 대응하였다. 교전은 하루에 예닐곱회에 달했으며 충차나 포석의 타격을 받아 파괴된 곳은 목책을 세워 수리하였다. 당군은 60일 동안 밤낮으로 쉬지 않고 토산을 올린 끝에 불과 수 장 거리에서 성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과의 부복애가 토산 수비를 맡았다. 얼마 후 토산이 무너져 성과 이어졌는데 부복애가 마침 자리에 없었다. 안시성주가 재빨리 수백 명을 출전시켜 토산을 빼앗고 해자까지 둘렀다. 당 태종의 3일에 걸친 탈환 시도도 모두 저지하였다.
겨울이 오면서 보급이 곤란해진 당 태종은 결국 총퇴각을 명하고 마지막으로 안시성 주위를 돌며 시위하였다. 안시성주가 병력을 물리고 홀로 성에 올라 작별의 예를 갖추었다. 당 태종은 안시성주가 성을 고수한 것을 가상히 여겨 비단 100필을 내리며 격려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인물을 다루는 방식에서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오히려 ‘사물’이다. 당시 권력자에 반하는 안시성 출신이지만 엘리트 교육기관 태학도의 수장이 됐고, 연개소문의 두터운 신임 속에 양만춘 암살을 명 받고 안시성으로 간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양만춘을 보고, 그를 죽이는 대신 함께 싸우기로 한다. 사물을 연기한 남주혁은 연기가 자연스럽다. 특히 발성이 훌륭했다.
이 영화는 양만춘과 이세민을, 아니 최소한 양만춘은 사물처럼 입체적으로 보여줬어야 했다. 가장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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