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무현 시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노무현’은 여전히 현재를 설명하는 매우 강력한 아이콘이다. 특히 제왕적인 권력으로 평가받는 우리나라의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가 퇴임 이후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기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정부(참여정부), 즉 노무현 시대에 대한 추억에는 숫자보다는 느낌,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종의 선입견 때문일까. 노무현 시대에 대한 평가에 대해 여전히 활발한 담론보다는 정치적인 논란과 인신공격이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노무현 시대에 대해 똑바로 응시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는 노무현 시대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일까.  

<서평> 노무현 정부의 실험 : 미완의 개혁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기획, 강원택 외, 도서출판 한울   이 책 <노무현 정부의 실험 : 미완의 개혁>(강원택 외, 한울)은 노무현 집권 5년에 대해 정치, 경제, 사회, 외교, 언론 등 분야별로 그 성과와 한계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본래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이 지난해 5월 노무현 정부에 대한 학술회의를 진행하면서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참여해 만든 자료였지만 행사 이후 책으로 묶어 발행했다. 행사용 발표자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문체와 구성이 들쑥날쑥인 측면이 있지만 노무현 시대에 대해 각 분야별로 성과와 한계를 크게 보려고 한 시도는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동시다발적 FTA, 보수정권이면 불가능했을 것

먼저 정치분야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실패와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이른바 4대 개혁입법의 실패의 의미를 다시 분석한다. 저자는 보수정당의 대통령 탄핵에 대한 분노가 열린우리당의 탄생으로 이어졌지만 당정분리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이상적인 접근이 결국 열린우리당의 정치적인 성장을 방해했다고 분석한다. 특히 정동영, 김근태, 정세균 등 미래 자생력이 될 인재들을 잇달아 행정부로 발탁한 것은 결과적으로 열린우리당이 자생력을 갖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실재로 정세균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입각하는 대신 당에 남아서 일을 더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치적인 한게는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의 좌절로 이어졌고 참여정부 후기에는 더이상 개혁을 추진할 동력을 갖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경제분야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정책은 역시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특히 개혁정부로 평가받는 참여정부가 여러 나라와 동시다발적인 FTA를 추진한 것은 지금도 그 타당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저자는 당시 동다발적인 FTA를 추진하면서 FTA 협상의 프로세스를 정립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2004년 6월에 대통령령으로 만들어진 ‘자유무역협정체결 절차규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것은 동시다발적 FTA 추진이 가능했던 배경에 대한 분석이다. 저자는 만약 보수정권이 같은 정책을 추진했다면 국내에서 더 큰 정치적 논란과 저항에 직면했을 것을 전망한다. 오히려 진보성향의 정부여서 이러한 진행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은 강력한 부동산 동맹에 대한 저항

재벌개혁과 부동산도 참여정부의 실정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부분이다. 재벌에 대한 경제력 집중도는 2008년 기준 국내 총생산(GDP)의 70% 수준까지 치솟아 역대 어느 정권보다 재벌에 대한 부의 집중이 강화됐다. 특히 이 시기에는 재벌의 신종 편법 재산상속 방식이 등장했는데 과거에는 신주를 헐값에 발행하는 수법을 주로 사용했다면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이 방법이 줄어드는 대신 ‘일감 몰아주기’가 신종 수법으로 널리 활용됐다. 삼성의 삼성SDS, 현대의 글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참여정부의 이러한 정책 방향이 ‘재벌을 압박해 투자가 부진해지면 고용이 줄고 경제가 침체된다’는 이른바 ‘투자부진론’에 굴복한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이러한 분석이 설득력이 있는 것이 당시 참여정부의 신진 정치세력 가운데 삼성을 비롯한 재벌에 포섭된 인물이 다수 있었다는 진술이 속속 나오고 있다.  

부동산 문제는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러나 저자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무기력하거나 철학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강화, 실거래가 신고의무화, 등기부 기재 등의 조치는 기본적으로 불로소득을 줄이고 지역별 차이를 줄이는 것에 집중된 것이었으며 특히 2005년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는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맞아 재평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 세대별 합산과세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좌초했고 이명박 정부 들어 사실상 의미를 잃었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그 요인의 하나로 개별가계-건설자본-주요언론-부동산관련 산업-관료와 학계-금융권으로 연결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강력한 부동산 동맹체제를 지목한다. 특히 보수언론의 경우 2006년 한해에만 조중동 3개 매체에서 244개 사설과 컬럼으로 부동산 정책에 대해 비난의 융단공격을 퍼부었는데 당시 전체 광고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던 부동산 광고주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이들 동맹에 대한 대항이었지만 해체는 물론 그 힘을 약화시키는 것도 모두 실패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복지국가 진입 첫발, 민간 주도 복지 확대는 한계

노무현 시대에는 비정규직보호법, 고용보험 가입 확대 등 복지정책이 크게 확대됐다. 이는 우리나라가 개발독재 시대를 넘어 복지국가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빈곤 악화와 중산층 삶의 질 하락을 막는데는 실패했다. 저자는 그 이유로 정부가 복지재정을 늘리는 적극적인 노력 없이 사회보험에 의존하는 재정조달 전략을 꼽는다. 즉 정부가 직접 돈을 쓰는 대신 민간 의료보험 등 시장을 확대하는 방식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 후폭풍은 최근 의료보험 민영화 논란과도 맞닿아 있다.  

국가가 부담해야 할 복지의 영역과 시장에 맡겨야  할 복지의 영역에 대한 경계를 잘못 그은 것은 뼈아픈 부분이다. 일단 시장에 넘어간 복지는 사실상 민간 시장을 파괴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다시 공공영역으로 포함시키기 쉽지 않다. 수조원을 형성하는 민간 암보험 시장이 있는데 공공 의료보험에서 암 치료비를 지원해준다고 하면 보험사들은 사활을 걸고 저항할 것이 자명하지 않겠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의료보험 개혁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가. 또한 저자는 비정규직 문제 관련해서 법으로 비정규직 고용을 규제하면 비정규직 문제가 크게 완화될 것으로 판단한 것도 전략적 실책으로 꼽았는데 나 역시 공감하는 바가 크다.  

노무현 시대의 여성정책은 의외로 호평을 받았다. 다양한 여성정책이 국가 주도로 큰 지원을 받으면서 진행됐는데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국가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참여정부의 여성정책은 보육과 성매매 방지를 위한 인권보호 정책 그리고 성주류화 정책 gender mainstreaming 등으로 요약된다. 특히 성주류화는 책을 통해 자세히 접할 수 있었는데 정책 추진과정에서 성별에 따른 차이과 이슈를 구분해 정책적인 차원에서 성평등을 이룰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를 들어 특정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성별영향평가, 즉 성별에 따른 차별이 있을 수 있는지 미리 평가해 이를 정책 시행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2004년 9개 기관 10개 과제, 2005년 57개 기관 87개 과제에 성별영향평가가 실시됐지만 정부 담당자들의 이해수준이 낮았고 여성부의 낮은 위상 때문에 정책조정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저자는 평가했다. 여성운동과 단체가 정부의 지원아래 놓이면서 자생력과 활동력을 잃은 것도 아쉬운 대목으로 평가했다.  

동북아균형자론, 현실적인 개념이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던 것은 2005년 2월 취임 2주년 국회연설에서 처음 언급했다는 ‘동북아 균형자론’이었다. 참여정부의 외교정책의 상징적인 용어인데 돌연 폐기됐다고 한다. 저자는 그 맥락을 당시 상황에서 설명한다. 당시 일본은 과거로 회귀하는 흐름이 뚜렷했고 미국에서는 대북 강경파인 네오콘의 입김이 절정에 달했다. 일본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움직임이 가사화되면서 중-일간 긴장도 고조되는 시기였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바로 이 시기에 나온다. 노 대통령은 3월 8일 공사 졸업식에 참석해 “주한 미군은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발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동안 동북아 힘의 균형이 미국에 의해 조정됐다. 중국이 너무 크지 않도록 일본을 통해 견제하되 양자간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당시 노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이 이런 역할을 더이상 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보수층의 집요한 공격을 당해 돌연 폐기된다. 아마도 대통령의 판단일 것이라고 저자는 추정한다. 저자는 동북아 균형자론이 미래를 걱정하는 대통령이라면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현실적인 개념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를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보수층과 미국의 입장을 고려했을 때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물론 결과적으로 성과가 있었다. 일본의 극우파 정권이 교체됐고 미국의 네오콘은 몰락했다. 중동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중국의 위기감이 줄어들고 동북아시아 패권경쟁에 따른 안보적 불안도 감소했다.  

‘다 노무현 때문이다’. 참여정부 후반의 미디어관계를 볼 수 있는 자조적인 농담이다. 저자는 노무현 시대부터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언론의 평가 담론의 대상이 됐다고 분석한다.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한 비판적 담론이 활성화되고 보수-진보 신문간 논조 양극화 현상도 이 때부터 본격화된다. 과거엔 논란이 되지 않았을 것조차 이념적 가치에서 보면서 갈등요소로 불거지게 된다. 저자는 당시 노 대통령이 탈권위적 의사소통 양식이 지배적 양식으로 떠오르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봤다. 또한 한발 더 나아가 전통적 매체로는 개혁의제를 제시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러한 방식은 정치적 설득에 실패했다. 지지자들을 실망시켰고 적대자에게 얕잡혀 보였으며 일반시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기자실을 없애고 출입기자들의 담론 담합을 깨겠다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에 대해서도 유럽과 달리 이념적 갈등이 첨예한 우리나라에서 개방적으로 소통해 설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반론보도 청구나 명예훼손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과연 정권에 도움이 됐겠냐는 것이다.  

앞으로 들어설 진보정권을 위한 반면교사

이 책은 노무현 정부, 노무현 시대에 대해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로는 의미가 있지만 노 대통령이 직접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인데다 그 시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현직 정치인이어서 자신의 이해에 따라 각색될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여전히 많은 부분은 베일에 쌓여 있다. 실제로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한 것에 대해서도 정황에 따른 추론만 가능할 뿐 원인을 추적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저자는 가장 큰 의문은 여전히 ‘왜?’라며 이유를 추론하는 대신 자서전인 <운명이다>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이뤄낸 우리 현대사를 보면 FTA에 내포된 위험과 불확실성을 우리 국민들은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다

책 자체가 국가운영 전반을 다루고 있어 매우 광범위하다. 그만큼 깊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여러 전문가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챕터별로 문체와 서술방식이 제각각인 것도 부드러운 글읽기를 방해한다. 특히 여성정책 파트의 경우 문체도 어렵고 용어까지 낯설어 ‘읽어내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그러나 이 책은 노무현 정부, 노무현 시대에 대해 객관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향후 새롭게 들어설 진보정권이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조언도 내놓고 있다. 먼저 정치분야에서 저자는 향후 개혁입법에 대한 시도가 다시 이뤄질 경우 어려움은 노무현 시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즉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은 성장과 안보만을 외치는 것으로 손쉽게 ‘수성’할 수 있고 개혁을 시도하는 세력은 시기와 전략, 이념과 손익을 놓고 갈등해야 한다”는 것. 더 많은 정치력과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언론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유연한 대응을 주문한다. 개혁정부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상충하는 이념과 가치에 둘러쌓여 힘겨운 다툼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설득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이미 막강한 권력과 자원을 갖고 있으므로 필요하다면 주고받기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보수신문과 기타 언론매체를 함께 고려해야 할 정치적 행위자로 보라는 것이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구조적 포용 structural engagement 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상대적으로 교류가 활발한 경제와 사회문화 부문 대비 정치적 화해와 군사적 신뢰구축에서 많은 과제가 남아있으므로 이 부분에서 진전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끄러움을 알려준 지난 5년

물론 개인적으로 이러한 조언들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역감정을 깨겠다며 부산에 3번 출마해 3번 떨어지는 ‘바보’ 노무현이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전문가들이 이상적이고 순진하다고 지적하는 바로 그 ‘이상과 원칙’이었다. 이미 완결된 이야기가 있는 상황에서 ‘타협하라’는 메시지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가치는 최근들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지난 4년여간 우리 주변에서는 그동안 이미 우리가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상과 원칙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온갖 꼼수와 편법이 ‘사리사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이것이 드러나도 ‘그들’만의 숨은 네트워크를 통해 파장이 최소화된다. 노무현 시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던 그들 권력집단들이 어떻게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한목소리를 내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MB의 가장 큰 능력이 아닐까) 어쩌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즉 돈일 것이다. 모든 권력집단이 자신의 호주머니를 권력과 돈으로 채우기 위해 매진할 때 상식을 뒤엎고 서민의 생활을 쥐여짜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허물들을 다함께 덮어주는 동일한 결과로 나타나는 셈이다.  

그래서 노무현 시대를 읽는 것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그 시대를 관통했던 이상과 희망을 읽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금이 얼마나 부끄러운가에 대한 고백이다. 이 책 <노무현 정부의 실험>은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시대를 어떻게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가에 대한 긴 여정의 입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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