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을 사는 사람들의 심리는 단순하다. 인생역전. 그것도 ‘한방에’. 특히 삶이 팍팍할 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역시나 ‘대박’은 (거의) 없다. 그만큼 흔치 않다. 내 주변에서도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많은 당첨자들은 다 어디간 것일까) 그래서 결국 꿈을 꾼다.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 그러면서도 내게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상황을 찾아 드라마와 책, 사진 그리고 영화를 찾는다.
영화 리미트리스(2011년, 감독 닐 버거)도 수년째 책을 쓰겠다고 책상에 앉아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백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스폰서 역할까지 겸했던 능력있는 여자친구는 결별을 선언하고 밀린 월세까지 생각하면 앞이 막막해 진다. 바로 그때 ‘그 약'(‘그 사람’이 아니다)이 다가온다. 마치 운명처럼. 약효는 놀랍다. 갑자기 10여년전 스치듯 봤던 정보들이 다시 떠오르는가 하면 책도 1주일이 안돼 끝낸다. 주식으로 떼돈을 버는가 하면 훈남으로 변신해 여자들을 유혹한다. 물론 옛 여자친구도 돌아온다. 올레!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이 약은 뇌를 100% 쓸 수 있게 해준다. 뇌에 저장된 방대한 데이터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지고 또 구석에 처박히는데 이 약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되살려 재구성하고 언제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한다. 초고성능 메인메모리 DBMS에 데이터웨어하우스, BI(Business Inteligence) 등을 통째로 구축해 놓은 초박형 시스템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존의 공상과학 영화와 이 영화가 차별화되는 곳도 바로 이 지점이다. SF 영화들은 이 약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만든 사람들의 역경과 고난을 묘사한다. 결국 ‘금단의 열매’와 같은 기술은 봉인되고 통제되지 않은 첨단기술은 인류 문명에 큰 위험요소라는 것을 설파한다. 그리고 살짝 허점을 흘려 속편을 예고한다. 반면 ‘리미트리스’는 이 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 지는 과감하게 생략한다. ‘부작용’이라는 약간의 변수를 넣지만 결국 이것도 큰 장애는 안된다. 자본주의 최강 몬스터인 생산과 유통의 ‘독점’ 문제도 살짝 건드리지만 슈퍼 인텔리전트 주인공에게는 역시 상대가 안된다.
리미트리스는 어떤 면에서 보든 판타지 영화다. 결국 주인공은 돈과 권력, 사랑 등 모든 것을 얻는다. 현재의 시스템을 넘어서서 극복했고 결국은 더 많은 것을 지배해 나갈 것이다. 또다른 슈퍼맨의 탄생 비화다. 닐 버거 감독은 전작인 일루셔니스트(2006년)를 봐도 비슷한 느낌인데 현실에서 약간 동떨어진 몽환적인 세계에 대해 끌리는 사람인 것 같다. 어쨌든 리미트리스를 보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새로 ‘그 약’을 만든 과학자의 또다른 유통경로를 만들 가능성은 없나? 모두가 뇌를 100% 쓴다면 주인공의 경쟁력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하지만 오 노! 질문은 금지다. 이건 판타지니까.
영화 리미트리스는 선거 결과에 멘붕이 된 사람에게 잠시의 진통제가 될지도 모른다. 특히 주인공이 정치인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은 현실의 한계를 해결하거나 혹은 현실 자체를 장악할 수 있는 방법이 결국 정치라는 것을 다시한번 보여준다. 물론 그는 ‘판타지’ 영화 속 주인공이니 바른 길을 걸을 것이다. 반면 2012년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에게는 ‘리미트리스’ 런닝타임이 끝나고 나면 ‘그녀’ 와의 5년이 기다리고 있다. 거의 끝나가는 MB 시계와 새로 시작하는 또다른 시계. (이것이야 말로 사전적 의미의 리미트리스 limitless!) 어쩌면 앞으로 더 많은 영화 ‘리미트리스’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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