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고 잔인하지만 이상하게 위로가 돼

주성치의 영화는 더럽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행색이 초라하고 찌질하고 어떤 면에서는 한심하다. 하는 행동도 진부하다. 그의 영화들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과장된 슬랩스틱들은 이번 영화에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카메라 움직임도 눈에 익다. 사람들이 놀란 듯 우르르 한발자국 앞으로 나서고 카메라는 시선 약간 아래에서 급하게 클로즈업한 듯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사실 이건 중국권 영화에서만 유독 자주 보이는 관행적인 카메라 워크다)  

더우기 이번 영화 ‘서유항마편‘(주성치, 곽자건 감독, 2013년, 중국)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기본적으로 서유기에 바탕을 둔 판타지, 코미디의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깜짝깜짝 놀란만한 잔인한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사오정, 저팔계가 아직 요괴였던 시절, 수행자였던 삼장법사와 처음 만날 때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데 당시만 해도 이들은 순수하게 원한으로 뭉친 존재이기 때문에 일부러 이렇게 설정한 것처럼 보인다. 손오공도 아예 철저하게 속물적이고 자기힘을 맹신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 역시 삼장 혹은 부처에 철저하게 마음으로 승복하기 전의 모습이기 때문에 삼장을 잔인하게 괴롭히고 인간들을 거리낌없이 살상한다.  

이런 단점을 뻔히 알고 있는데도 주성치 영화는 묘하게 사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힐링'(healing)의 힘이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영화는 삼장이 아직 수행자 시절에 사오정, 저팔계, 손오공을 처음 만난 이야기를 뼈대로 한다. 사오정과 저팔계는 인간이었던 시절에 오해와 모함으로 원한을 갖고 죽어 요괴가 되어 사람들을 괴롭히는 존재였는데 퇴마수행 중인 삼장과 만나게 된다. 손오공은 서유기 원작대로 부처에게 대항하다 500년간 갖혀 지낸다는 설정을 그대로 가져 왔다.  

서유항마편은 개봉전부터 주성치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서유기-월광보합‘(1994년, 중국, 유진위 감독), ‘서유기-선리기연‘(1994년, 중국, 유진위 감독)의 연작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두 영화를 미리 본 관객이라면 이번 영화 속 설정들이 반가운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서유기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에서 삼장은 이상한 노래를 부르는 수다쟁이, 구재불능 잔소리꾼으로 나온다. 주성치가 분했던 손오공은 그 잔소리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다며 부처에게 하소연 하곤 한다.  

서유항마편에서 삼장은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동요300수’라는 책을 들고 다니며 요괴를 회개시키겠다며 노래를 불러댄다. 다른 퇴사마처럼 그럴듯한 기술하나 없다며 심통도 부린다. 그런 삼장이 나이가 들어 이상한 노래나 부르는 수다쟁이가 돼 동료인 손오공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물론 서유항마편과 서유기 연작 간의 연결고리가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그리 매끄럽진 않다. 그러나 이러한 익숙하고 기발한 몇몇 설정들이 연결되기 때문에 서유기 프리퀼(prequel)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이번 영화의 핵심 줄거리는 삼장의 사랑 이야기다. 서기가 분한 엉뚱 발랄한 퇴마사의 일방적인 구애와 더 큰 사랑을 추구하는 삼장의 이성이 부딪힐 때마다 큰 사건들이 벌어진다. 그러나 결국 그가 멀고 험한 서역으로 경전을 찾아 떠나게 된 것은 결국 속세의 아픈 사랑을 겪은 후 더 큰 사랑을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서다. 그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본 순간부터 당신을 사랑했다”고 고백할 때였다.  

서유항마편이 삼장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라면 서유기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은 ‘월광보합’이라는 기이한 물건을 이용해 시간을 넘나드는 손오공의 사랑이야기다. 내세와 현세를 뛰어넘어 같은 인물을 사랑했던 손오공은 결국 사랑의 덧없음을 깨닫고 다시 서역으로 가는 여정을 계속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하는(했던) 여인에게 끝내 하고픈 말을 하지 못하고 돌아선다.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한 채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행복해 하는 여인을 두고 서역으로의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손오공의 뒷모습은 다시봐도 가슴이 짠하다.  

결국 주성치 영화의 힐링 효과는 ‘사랑’이었던 것 같다. 서유기라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판타지의 뼈대 위에 각 인물들의 개성과 약점을 적절하게 비틀어 기존의 작품들과 차별화하고 동시에 사랑이라는 주제로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어떤 면에서는 정말 영악한 영화인 셈이다. 특히 천방지축 날뛰던 혹은 고지식하고 답답하게 당하기만 하던 인물들의 진심이 드러나고 이를 통해 아무리 괴물같은 힘도 파괴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설정은 짜릿한 권선징악 판타지다.  

영화 속 삼장은 요괴한테 맞고 사람들한테 욕먹고 같은 퇴마사들에게 무시당해도 ‘동요300수’ 책을 가슴에 품고 강력한 요괴를 찾아 나선다. 애써 개인적인 욕망을 부정하며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대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남들 다 한다는’ 편법이나 탈법, 뒤통수치기하는 비겁한 삶을 살고 싶지 않은, 가난하더라도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당당한 삶을 살고 싶은 우리 모습과 다르지 않다.  

무술도 못하고 제대로 된 퇴마 장비 하나 없는 ‘찌질이’ 삼장이 결국 깨달음을 얻어 쟁쟁한 퇴마사들도 굴복시키지 못했던 손오공을 아랫사람으로 부리는 성공담이 더 통쾌한 것도 이 때문이다. 거기에 사랑까지 적절하게 버무렸다면 어떻게 이 영화에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나. 알고도 속는 영화, 더럽고 잔인하고 진부하고 유치하지만 결국은 공감하고 다시 찾게 되는 영화. 그것이 주성치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덧. 영화 속 삼장역할을 맡은 문장이라는 배우는 주성치의 젊은 모습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주성치 스타일(?)을 잘 소화한다. (이건 감독으로서 주성치의 역량이기도 한 듯) 그동안 스캔들과 추문의 단골 손님이었던 서기도 오랜 만에 좋은 역할을 맡아 매력을 발산한다. 무엇보다 손오공 역할의 황발이라는 배우가 놀랍다. 어떻게든 삼장을 속여 동굴을 탈출해야 하는 상황인데 처음 등장할 땐 ‘너무 늙은 손오공 아니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어느새 ‘잘하네’ 감탄을 하게 된다. (특히 서기에게 춤을 가르치던 장면은 애드립인 듯. 둘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자지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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