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heEnd] 2025년 10월

2025-11-09

2theEnd to the end, 끝까지 본 작품에 대한 짧은 기록

폭군의 셰프

  • 장태유 외 연출, 이희명 극본, 임윤아ㆍ이채민ㆍ강한나 등 출연, 2025년
  • 의외의(?) 흥행 이유는 누구나 예상하듯 병맛 음식맛 표현이다. <요리왕 비룡> 애니메이션을 우리 나라 역사를 배경으로, 우리 배우가 등장하는 실사 화면으로 보는 날이 올 줄이야. 단지,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사건과 인물이야 그렇다고 해도 결말은 너무 갔다. 무려 역사를 바꿔 (누군가를) 현대로 타임 워프를 시켰는데 “그 과정이 뭐가 중요하겠어~” 나레이션 한 줄로 처리해 버렸다. 해피엔딩에 대한 강박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해피엔딩은 (거의) 언제나 옳다.

사마귀

  • 이태성 감독, 임시완ㆍ박규영ㆍ조우진 등 출연, 넷플릭스 영화, 2025년
  • 영화 <길복순>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후속 작품이다. <길복순>이 스타일리쉬한 영상과 예상치 못한 일상 블랙 코미디로 반짝 반짝 빛나는 영화였다면, <사마귀>는 시종일관 긴장감이 없다. 전작의 후광이 강하다고 해도 설경구, 전도연이 카메오로 등장하는 장면이 전작의 세계관을 순식간에 소환하는 반면, 정작 그 소환된 세계에서 젊은 배우들이 화면을 장악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닌다. 그렇다고 새로운 색깔로 덧칠을 하느냐, 그것도 애매하다. 결과적으로 영화 내내 긴장감이 떨어진다. 이전 세대 주요 인물의 퇴장으로 아사리판이 된 길복순 세계관에, 역설적으로 길복순 밖에 남지 않았다. 또 후속작이 나온다면 길복순이 새로운 악당이 되는 설정 외에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바이오메가

  • 니헤이 츠토무 글/그림, 서울미디어코믹스 출판
  • 알 수가 없다. 아득히 크고, 아득히 긴 세계관인 것은 알겠는데 스토리가 너무 튄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세계관 속에서 진행되므로 언젠가, 누군가 기존 작품을 모두 갈기갈기 분해해서 연대기 순으로 나눠 정리한 통합본 같은 걸로 내줬으면 좋겠다. 놀랍게도 작가마저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모양이다. 그의 또다른 작품 <아바라> 후기를 보면 10년전 자기가 그린 작품인데도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며 ‘이런 거 아니었을까?’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엥? 그의 작품 중 그나마 기승전결이 분명한 것으로 알려진 <시도니아의 기사>는 아직 국내에서 정식 발매되지 않았다.

다 이루어질 지니

  • 이병헌ㆍ안길호 연출, 김은숙 극본, 김우빈ㆍ수지ㆍ안은진 등 출연
  • 사이코패스 설정이라고 하지만 수지의 연기가 자연스럽지 않다. 사실 사이코패스를 일상에서 직접 접한 경험이 없으니 저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모른다는 게 더 정확하다. 나중의 평범한 감정을 잠시 경험(?)할 때 오열하는 장면에서 평소의 수지와 확연한 차이를 느껴야하는데 그렇지 않다. 반면 김우빈은 능수능란하고 납득이 된다. 단지 극본 자체가 감정의 기복이 크게 튀는 설정이 많아서 그걸 화면에서 보는 게 어색하다. 초반에 수지가 지니를 폭행하는 장면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제작진도 느꼈는지 이후에는 화면 밖에서 소리만으로 처리하거나 위협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3가지 소원으로 시작된 3*5가지 소원, 사라진 기억 등 설정이 꽤 복잡해서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특히 마지막 소원을 빌면 지니와 소원 관련된 기억이 사라지는데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 온갖 불평과 당혹스러움,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수지가 너무 이쁘게 나온다. 수지는 옳다.
<북극성>은 속도감이 좋은 작품이다.

북극성 👍

  • 김희원ㆍ허명행 연출, 정서경 극본, 전지현ㆍ강동원ㆍ이미수 등 출연
  • 매우 미국 드라마스러운(?) 국산 드라마다. 국경을 넘나드는 스케일에 쉴새 없이 몰아치는 위기 상황, 그리고 잠시의 여백 동안 벌어지는 두 주인공의 로맨스 등이 대표적이다. 시종일관 진지한 (그래서 쉽지 않았을) 전지현의 표정 연기가 일품이고 순간순간 훅 들어오는 꽃중년 강동원은 매혹적이다. 단지 최종 빌런의 갑작스러운 세계 평화 운운은 당혹스럽다. 미국 본토에 핵 폭탄 수십 개가 떨어져야 인류가 앞으로 천년 동안은 평화만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인데, 곰곰 생각해 보니 꽤 허황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시즌 2가 나올 수 있을까? 대통령 선거 이후 전지현이 새로운 위기에 직면할 때 강동원이 특유의 ‘미지근하지만 에로틱한’ 미소와 함께 다시 등장하면 꽤 그럴 듯 할 것 같다.
<삼체> 속 비극의 시작은 상실이다. 단지 이번엔 그 스케일이 전 우주적이다.

삼체 (시즌1) 👍

  • 앤드루 스탠튼 등 연출, 류츠신 원작, 에이사 콘살레스ㆍ베네딕트 등 출연
  • “인간의 문명을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 (외계 침략자여) 지구로 와라. 너희가 지구에 정착하도록 내가 도와주겠다” 중국 문화대혁명 중 가족을 잃은 주인공은 외계 문명체를 지구로 불러 들인다. 이제 인류는 400년 후 지구에 당도할 그들과의 조우(혹은 전쟁?)를 대비해야 한다. 인류 역사를 봐도 커다란 비극의 출발점은 결국 상실이었다. 단지 이번엔 그 스케일이 전 우주적이다. 드라마는 컴퓨터 그래픽이 다소 이질적이고 등장 인물이 많은 데다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해서 진입 장벽이 좀 있다. 하지만 배우의 연기가 훌륭하고(영어 연기인데도 설득이 된다),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는 고민 거리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경제 체제로서 자본주의,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가 한계에 달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느낌이 든다. 이 드라마는 그 해법(?)으로 외계 세력을 끌어 들인 것이 흥미롭다.
  • 우주적인 것은 전쟁만이 아니다. 오랜 친구인 진 청을 향한 윌리엄 다우닝의 사랑도 문자그대로 ‘우주적’이다. 그는 어렵게, 정말 어렵게 마음을 전하지만 작별 인사조차 제대로 못하고 기약 없는 여행을 시작한다. 우주 미아가 된 그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그것이 무엇이든 수십년, 수백년이 걸리는 일이라 마음이 아린다. 젊은 시절 희귀 조류 보호 운동을 하다가 외계 생명을 섬기는 조직을 만든 마이크 에번스라는 인물도 흥미롭다. 재벌가 아들인 그는 가장 먼저 외계 문명을 수용하고 그들의 재림을 준비한다. 어떻게 재벌 2세가 이렇게 생각이 유연할 수 있는 걸까. 아마도 젊은 시절 충분히 방황해도 될만큼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는 부모의 돈으로 인생에서 잠시 길을 잃어도 될만큼 충분한 시간을 이미 샀으니까. 그는 외계 문명과의 접촉을 독점하고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조직의 수장이 된다. 그가 가진 리더로서의 여유는, 바다 위에 떠다니는 거대한 공동체 배를 만들 수 있는 재력과 신적인 존재에 대한 정보 독점에서 나온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시대에 이보다 어울리는 설정이 있을까.

시도니아의 기사 (시즌 1)

  • 시즈노 코분 감독, 니헤이 츠토무 원작
  • 작가의 이전 작품 대비 세계관이 훨씬 친절하다. 덕분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 있게 된 걸 수도 있고 반대로 애니메이션화되면서 더 쉬워진 걸 수도 있다. 분위기도 가볍다. 간지러운 청춘물 느낌이 난다. 그럼에도 니헤이 츠토무 특유의 흥미로운 SF 설정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작품 속 인간은 유전자 조작으로 광합성이 가능하다. 덕분에 1주일에 1번만 식사를 해도 된다. 한 사람이 소비하는 식재료 소비가 줄면서 우주 공간 속 거대한 함선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공존할 수 있게 됐다. 성장하면서 성별을 선택해 남자 혹은 여자가 될 수 있다는 설정도 인상적이다. 단지, 이 멋진 설정에도 스토리의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부분인데 주요 인물의 감정 표현이 매우 서툴거나, 가면 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노출하지 않으려 제약을 두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죽음에 관하여

  • 시니 글, 혀노 그림, 네이버 웹툰
  • 죽음에 대한, 정확히는 죽음을 맞이하는 시점의 다양한 상황과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했다. 작품의 세계관 자체는 매우 심플하고 제한적이다. 큰 감정의 공감보다는 심심한 듯 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가장 큰 장점은 글이다. 천천히 곱씹어 볼만한 인상적인 대사가 많다. 이런 멋진 대사가 웹툰 특유의 빠른 리듬에 묻혀 가볍게 소비되지 않도록 여백을 지능적으로 사용했다. 감각적이고 영악하다. 같은 작가가 더 긴 호흡으로 만든 작품은 어떨까 기대하게 된다.

혼자 조심하기보다 중요한 건 서로 조심하는 거야.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게 결국 자신을 위하는 게 되는 거거든.

긍정이란 환경에서 오는 것이었고, 환경이 긍정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긍정이란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특별했기에 긍정적으로 된 것이 아닐까.
나는 단지 운이 좋았던 게 아닐까.

저에게 여유를 좀 주시기 그랬어요.
시간은 남이 만들어 주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