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heEnd] 2025년 7~8월

2025-09-02

2theEnd to the end, 끝까지 본 작품에 대한 짧은 기록

말은 안 되지만

말은 안 되지만
제목 자체가 중의적인 말장난처럼 느껴진다.
  • 정해연 글, 자음과모음 출판
  • 술술 읽히는 문체의 단편 소설집이다. ‘말은 안 되지만’이라는 책 제목과 같은 단편이 가장 인상적이다. 아이가 자라 일정 시기가 되면 돼지 혹은 말이 돼야 하는데 돼지로 변하면 평범한(?) 삶을, 말이 되면 차별과 멸시를 받는 세상이 배경이다. 주인공은 당연히 말이 된다. 현실을 부정하며 가출을 감행하지만 집 밖의 세상은 더욱 처참하다. 대학 입시와 경쟁 문화에 대한 풍자로 보이는데, 시치미 뚝 떼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상상력이 흥미롭다. 지금도 충분히 재밌지만, 소설 속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마장은 도식적이고 답답하다. 다른 공간, 다른 역할이었다면 어땠을까. 아, 그러면 말이 아니라 다른 동물이 돼야 할 수도 있겠구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

  • 매기 강 감독,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 가장 큰 매력은 OST다. 조금 지루하고 유치해질까 싶으면 (특히 눈이 하트로 변하거나 복근을 강조하는 장면) 제대로 홀리는 노래가 눈과 귀를 잡아끈다. 전반적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 답게 작화가 훌륭하지만 노래 부르고 춤추는 부분은 특히 뛰어나다. 우리나라 문화와 정서, 거리 모습을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표현한 작품을 소니가 만들 줄이야. 끝까지 보고 나면 이상하게 호랑이와 까치가 머리에 남는다. 이 씬스틸러들의 정체는 뭘까. 그들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 설정만 보면 속편도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현재의 전 세계 흥행을 생각하면 당연히, 넷플릭스가 만들지 않을 이유도 없어 보인다.

불타는 작품

  • 윤고은 글, 은행나무 출판
  • <R의 똥>은 너무 나갔다. 보통 X로 처리하는 이 단어가 나오는 순간 그 강렬함 때문에 지금까지 켜켜이 쌓아 온 긴장과 호기심의 맥이 풀린다. 그래 놓고 열린 결말이라니!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김하나ㆍ황선우 글, 이야기장수 출판
  • 이성애자 여성 두 명의 동거기다. 두 사람의 글을 번갈아 싣는 형식인데, 사실상 노골적인 비교여서 굉장한 부담이자 모험이었을 거다. 그런데도 두 사람의 글쓰기 스타일은 조금 다른 방향에서 고수의 반열에 올라 있어서 오히려 좋은 시너지를 만들었다. 한마디로 글을 읽는 맛이 상당하다. 단지, 다 읽고 나면 ‘조금 더’를 기대했던 정도는 아니다. 그들은 주체적으로 씩씩하게 긍정적으로 살았습니다,에서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대단한 사회 운동의 투쟁기도 아니고 원래 (생활) 에세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

전지적 독자 시점

전지적 독자 시점
주인공은 한계가 있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고구마가 아니다. 오호~
  • 김병우 감독, 이민호ㆍ안효섭ㆍ채수빈 등 출연
  • <나 혼자만 레벨업> 같은 1인 원맨쇼 대신 협업과 희생을 강조한 설정이 흥미롭다. 적자생존, 각자도생 시대에 이런 가치를 말하는 영화가 나왔다는 것만도 반갑다. 커뮤니티에서 많이 회자했던(가루가 되도록 까였던) 나나의 액션씬도 어설프지 않다. 충분히 이해된다. 단지 이 영화는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다. 일단 기본 설정과 인물에 대한 설명은 다 한 것 같은데, 흥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후속편이 나올지 미지수다. 그래서 안타깝다. 사실 <어벤져스> <존 윅>같은 극소수 작품을 제외하면 일단 원작 초기 내용으로 영화 만들고 흥행 잘되면 후속편 만들지,라는 생각이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존 윅> 같은 경우는 1편 만으로도 은퇴한 킬러의 복수담이라는 이야기의 완결성이 있다. 반면 이 영화는 주어진 미션 중 하나를 끝내고 엔딩 타이틀이 올라온다. 이런 구성이 영화라는 매체 특성과 어울리는 것인지 매우 매우 의아하다.

괴수 8호 시즌 1

  • 미야 시게유키ㆍ카미야 토모미 감독,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
  • 30대 초반이 나이 많다고 징징 대는 게 귀엽다. 주인공은 결국 군대 시스템 내에서 괴수이자 인간임을 증명해 낸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 군대에 대한 우호적 묘사 등 특유의 일본스러운 설정이 거슬린다. 장관의 딸, 최고 군사 기업 집안에서 내쳐진 아들, 어릴 적 친구 등 아침 드라마급 설정이 난무한다. 그럼에도 해부학적인 괴수 묘사가 신선해서 계속 보게 된다. 잉?

H2 오리지널 👍

H2 오리지널
최선을 다해 살며 오늘에 맞는 선택을 하면 미워할 수 없다.
  • 아다치 미츠루 글ㆍ그림, 대원씨아이
  • 간만에 정주행. 처음에는 히카리가 어장관리녀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히데오, 히로, 히카리 모두 저마다의 역사와 판단으로 오늘을 충실하게 살고 있는 거였다. 얘들아, 격하게 응원한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글, 임호경 번역, 열린책들 출판
  • 우연의, 우연의, 우연이 겹친 100세 노인의 모험담이다. 각 우연 사이에 노인의 과거를 하나씩 꺼내 보여주는 변형이 있지만, “오~ 이런 우연이!”도 한두번이지. 페이지가 늘어날수록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소녀종말여행

소녀종말여행
그나마 공들여 배경을 그린 장면이다.
  • 추크미즈 글ㆍ그림, 학산문화사 출판
  • 인류가 (거의 거의) 멸망한 미래의 어느 시대, 버려진 거대 도시에 사는 어린 소녀 2명이 도시의 최상층으로 가는 여행이 주요 내용이다. 성의 없는 듯한 그림체는 끝까지 정이 안 가지만, 먹고 만나고 씻고 이동하는 여행의 반복이 지루하지 않다. 아니, 사실은 조금 지루하다. 선문답 같은 대화에 설득력을 부여하려면 더 공들여 표정을, 배경을 묘사해야 했다. 그렇다고 해도 분명한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아득히 넓은 공간, 아득히 긴 시간의 흐름을 간접 경험할 수 있을만큼 잘 표현한 것이 발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