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heEnd] 2025년 9월

2025-10-02

2theEnd to the end, 끝까지 본 작품에 대한 짧은 기록

러프 👍

승부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차도, 채여도 몇 번이고 여름이 온다.
  • 아다치 미츠루 글/그림, 이청 번역, 대원씨아이/DCW 출판
  • 고교 ‘야구’ 전문(!) 작가 아다치 미츠루 중 가장 호평 받는 작품이 본격 고교 ‘수영’ 만화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벌써 몇 번째 정주행인지. 그런데도 볼 때마다 설레는 명작이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 봤는데 이 작품은 성장 드라마의 클래식한 기승전결 구성이면서도, 스토리를 풀어내는 리듬이 파워풀하다. 특히 남녀 주인공인 각성(!)하고 결말을 향해 한 순간에 내달리는 속도감이 일품이다. 예를 들면 야마토 케이스케는 원수(?)의 집안에 가서 그동안 숨겨 왔던 정체를 당당히 밝힌다. 그렇게 현실을 인정하고 어른이 된 후 마지막 승부까지 전력질주한다. 이보다 빨리 자신의 진심을 마주한 니노미야 아미는 눈앞에 닥친 시련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마음을 전할 어른의 시간을 고민한다. 점점 고조된 긴장이 수영 결승전에서 카타르시스로 폭발하려는 순간, 작가는 승부의 결과를 열린 결말로 감춰 버린다. 대신 아미가 자신의 마음을 전했음을 무심한 듯 지면으로 보여준다. 결승선을 먼저 통과한 것이 케이스케이든 아니든 케이스케와 아미는 행복할 것이다. 이보다 완벽한 완급이 있을까. 아디치 미츠루 작품 중 최고의 엔딩이다.

휴고

  •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벤 킹즐리ㆍ에이사 버터필드ㆍ클로이 그레이스 머레츠 등 출연, 2011년
  • 영화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이 뤼미에르 형제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그들의 영화는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 등 픽션이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에 더 가깝다. 반면 조르주 멜리에스는 달을 여행하고 용과 싸우는 등 오늘 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화에 더 가까운 작품을 많이 남겼다. <휴고>는 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멜리에스와 거의 영화를 재발견하는 작품이다. 이 작업의 의미는 충분히 알겠는데, 영화적 재미에 대해서는 사실 물음표다. 영화 전반부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과시하는 오토머튼(automaton)의 비밀은 좀 맥이 빠지고 유일한 악역과 주인공 휴고가 화해(?)하는 서사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두 아역의 연기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색하다.

눈에 밟힌 발걸음

  • 사이사 글/그림, 네이버 웹툰
  • 제목의 ‘눈에 밟힌’은 내리는 눈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신경이 쓰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존하는 것만 남은 극한의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눈에 밟히는’ 것은 아마도 생명, 배려, 낙관 같은 가치가 아니었을까. 결국 선우는 목적지에 도달하지만 그 과정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대부분 우연 또는 배경이 모호한 선의다. 세상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하다는 데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물 한잔 안 마시고 밤고구마를 먹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장송의 프리렌 (애니메이션) 👍

  • 사이토 케이이치로 감독, 야마다 카네히토 작가, 아베 츠카사 작화
  • 벌써 4번째 정주행, 정 볼 것이 없으면 넷플릭스를 열어 백색소음처럼 틀어 놓곤 한다. 그리곤 새롭게 눈에 들어온 장면과 대사를 보면서 새삼, 또 감동한다. 고작 100년을 사는 인간이 수천년을 산 엘프를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아마도 영원과 같은 시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너무 일찍 늙고 죽어버린 힘멜과 여전히 무심한 프리렌을 보는 것이 안타깝고 아련하다. 애니메이션 시즌 2는 내년 1월에 나온다.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