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에바 그린, 지는 팀 버튼

팀 버튼의 영화는 묘하게 암울하다. 밝은 느낌의 영화들도 인물이나 설정이 히스테릭하고 심지어 수퍼 히어로물도 동경하고 싶은 대상이기 보다는 안타깝고 힘들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의 최신작 <다크 섀도우>도 그렇다. 결말은 해피 엔딩이지만 ‘그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자막은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 동화의 세계를 반복적으로 차용하는 그의 영화가 결국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점이고 또 (역설적으로!) ‘팀 버튼표’ 영화가 독특한 매력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영화는 신대륙에서 어업으로 일가를 이룬 콜린스 가문의 이야기다. 바람둥이이자 동시에 수완가였던 바나바스 콜린스는 잠시 사귀었던 하녀이자 마녀인 안젤리크의 저주를 받아 뱀파이어가 된다. 200년 후 다시 깨어난 그는 안젤리크가 그 오랜 기간동안 콜린스 가문을 괴롭혀 온 것을 알고 다시 가문의 재건에 나선다. 하지만 200년전 사랑했던 여인과 운명처럼 다시 만나고 콜린스에 대한 안젤리크의 집착은 다시 커진다. 팀 버튼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 결국 나쁜 사람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콜린스는 이제 뱀파이어가 된 사랑하는 여인과 행복을 꿈꿀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는 팀 버튼 영화 가운데 가장 혹평을 받는 영화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 같다. 실제로 초반은 다소 지루하고 200년을 건너 다시 만난 두 연인이 서로 호감을 만들어 가는 과정도 굉장히 압축되거나 혹은 생략됐다. 생뚱맞을 수밖에 없다. 안젤리크의 정체에 대해서도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다. 결국 이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신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뱀파이어로 만들어 200년간 가두고, 그렇게 했는데도 가질 수 없다면 기꺼이 다시 가두겠다고 하는 안젤리크의 수백년에 걸친 사랑이 메인 테마다. 맞다. 진부하다. 그렇다고 해석이 새롭느냐? 그것도 아니다. <화성침공>에서 그 막강한 외계인을 결국 컨추리 음악으로 무찌른다는 발상같은 반전도 없다. 누군가 팀 버튼 영화가 스타일만 남아가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도 나름 일리는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매력은 꽤 있다. 다소 과장된 듯한 조니뎁의 연기도 좋고 미셀파이퍼 같은 중량급 연기자들도 인물을 살린다. 주요 배경이 되는 콜린스 저택을 비롯해서 장면 하나하나의 디테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만큼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반응이 좋지 않은 것은 대사 때문인 것 같다. 이 영화는 200년 만에 깨어난 콜린스가 70년대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언어적 차이로 웃음을 유발하는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하지만 고전과 신화를 넘나드는 문어체 대사의 맛을 외국인인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특히 한번 번역된 자막으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에바 그린의 매력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007 카지노 로얄>에서 인상이 참 강렬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준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보면서 임수정이 화면 속 자신의 모습에 대해 굉장히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에바 그린에게 이 영화가 비슷하지 않을까. 특히 에바 그린의 최근 출연작 목록을 보고 있으면 그가 상업영화와 비주류영화를 넘나들면서 점점 더 니콜 키드만이 이뤄내고 있는 세계로, 혹은 이미지로 나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팀 버튼의 시대가 이제 점점 가고 있다는 것이다. (조디 뎁도?) 뒤돌아보면 그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1990년대 작품이었고 2000년 이후 인상깊게 본 것도 <유령신부> 정도였다. 내년에 로봇을 타고 괴수에 맞서는 지구방위대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다고 하니 그의 장기인 액션 히어로물로 화려하게 부활하기를 기대해 본다. 팀 버튼은 여전히 헐리우드가 갖지 못한 무언가를 상징하는 아이콘의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PS. 그나저나 로봇 영화하니 문득 생각나는데 실사판 <로보트태권V>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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