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 a clue a day, 하루에 하나씩 흥미로운 생각꺼리
‘과시적 소비’가 아니라 ‘모방적 소비’가 문제다
홍기빈, 글로벌 경제연구소 소장, 씨네21 1467호, 2024년 8월
주요 내용
- 소스타인 베블런1의 <유한계급론>에서 가장 유명한 개념은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모방적 소비’ 개념
- 과시적 소비란 자본주의 지배 엘리트들이 피지배계층과 다른 종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전혀 쓸 데 없는 품목에 엄청난 돈을 지출하는 것. 1억짜리 ‘만수르 세트’가 대표적이고, 우리말로는 ‘돈지랄’
- 모방적 소비는 중상류층 이하가 과시적 소비를 흉내내는 것. 물론 그만큼 소비를 불가능하고, 예를 들면 만수르 세트 대신 ‘천수르 세트’를 구매하는 식
- 모방적 소비는 다시 아래 계급으로 파도치듯 전달되고, 대신 과도한 부의 집중이나 퇴행적 소비 문화에 대한 비판은 사라짐
- ‘돈지랄’ 하는 이들이 있다면 ‘저런 사람들이 있나보다’ 빨리 넘기는 것이 좋다
- 나의 ‘좋은 삶’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반드시 조달해야 하지만 ‘모방적 소비’에 휩쓸려 봐야 몸과 지갑만 축나고 황폐해질 뿐이다.
소비는 힘이 세다. 게다가 상당히 중독적이다. 비비고 만두 하나 주문해 놓고 자야지, 시작했던 쇼핑이 어느 새 1시간째 이리저리 가격을 비교하고 구매 후기를 찾곤 하는 식이다. 이 매혹적인 소비가 사실은 과시적 소비와 모방적 소비의 상승 작용으로 구성되고 무한한 경제 성장에 대한 압력이 되고, 결국 과잉 생산, 기후 위기 등 인류 전체를 위험에 몰아 넣는다는 전개가 매우 흥미롭다.
더 많이, 더 비싸게 소비함으로써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식은 결국 한계에 부닥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특히 지역별, 국가별, 계층별 빈부 격차를 키우는 현재와 같은 방식이라면 더 그렇다.
그렇다면 경제는 꼭 성장해야만 할까? 일단 “그럼 너는 올해, 내년 연봉 깎을래?” 같은 원초적인 질문 앞에서는 말문이 막히게 된다. 반면 “그럼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제대로 올려주긴 하나?”라고 물으면 “그건 알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생각해 보면 시장도, 욕망도 결국은 힘의 충돌이다. 누가, 얼마나, 어떻게, 상상해 실현하느냐의 문제다. 단지 지금까지는 더 자유롭게 자원을 쓰고 소비를 조장하고 격차를 옹호하는 쪽이 우세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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