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t2Test] 2025년 하반기

2025-12-31

Put2Test.Put something to the Test 시험에 들게 하다, 계속 보기를 중단 혹은 결심한 결정적 장면들

젠틀맨

  • 가이 리치 감독
  • 1화 초반의 이 맥빠지는 핸드헬드는 아니지. 미리 서서 기다리는 듯한 어색한 연기에 유능한 군인의 일처리란 이런거야, 라고 보여주기에는 너무 민망한 퀘스트들. 이게 시리즈 1회의 첫 장면이라고?! 일단은 참고 계속 플레이했는데 또 걸리는 부분이 나온다. 형의 사채 빚을 어찌어찌 해결하려는 때 형이 또 사고를 친다. 1회부터 너무 순조롭게 전개돼 이 상황을 어떻게 꼬아 놓을까, 기대(?)를 했지만 이게 뭐야! 게다가 이미 당했던 사기꾼에게 또 속다니! 너무 성의 없는 선택이 아닌가?

나의 해방일지

  • 김석윤 감독, 박혜영 극본
  • “아무리 그래도 애 딸린 홀애비는 아니지!” 억울한 소개팅 사연을 토로하던 그들은 우연히 옆 테이블에 어린 아이와 남자만 앉아 있는 걸 발견한다. 그리고는 이내 말 조심 모드로 돌입하고 심지어 소근소근 이야기한다. 근데 사실, 늦은밤 다닥다닥 붙어 앉은 술집이라고 해도 옆 테이블 대화 따위 아무도 관심 없지 않나?
  • 인물의 서사가 쌓이면 점점 더 설득이 되겠지만, 첫회, 첫장면부터 미친듯이 화를 내는 장면이 불편하다. 이민기의 연기를 이 작품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장면은 입 담배 피우는 중학생을 바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진다.
  • 그럼에도 이 드라마 묘하다. 일하고 밥먹고 출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해서 보여주는데 수십년 함께 생활한 인물 간의 무언의 합(!)을 굉장한 속도감으로 보여준다. 새로울 것 없는 하루하루가 엄청 능숙하고 걸림이 없는 궁극의 숙련됨과 만나 꽤 흥미진진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굿파트너

  • 김가람 감독, 최유나 작가
  • 인간적으로 법원 앞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서 판결에 대한 반응을 묻는 이런 장면은 쓰지 말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기자가 열이면 열 검찰청 기자실에 가 앉아서 검사 입만 바라보며 알랑거리는 거 다 알지 않나? 그걸로 ‘단독’ 달아서 클릭질 장사하다가 검찰 주장이 다 뒤집혀도 법원에 가지도 않고 몇 줄 단신으로 정정하는 게 현실인데, 이게 얼마나 같잖은 장면이란 말인가. 해외 변호사 드라마는 법정 중심인 그들 사법 체계에 맞춘 것이니 설득력이나 있지, 우리나라에서 이게 무슨?! 그런데도 변호사 드라마에서 무책임하게 성의 없이 반복된다.
  • 올려찍기 앵글 남발하지 말자.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백만 번은 봤을 것 같은 이런 출근 장면이 최선이었을까. 짠자잔 짠자잔, 배경 음악에 아래에서 위로 올려 찍는 앵글, 나이든 사원까지 모두 일어나 위를 보며 인사하는 이 설정이 과연 현실에 존재할지 의문스럽고, 설사 사실이라고 해도 이걸 이렇게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똥 싸는 장면을
  • 어리버리 신입 변호사가 뻔뻔스럽게 바뀌는 순간이 흥미롭다. 불과 몇 분 전 장면의 당혹스러움과 이 장면의 능청스러움이 분명하게 대비된다. 90%는 연기의 힘, 10%는 편집의 힘이다. 흥미롭다! MZ 신입 사원에 대한 학습 방식(?)이나, 후배 변호사, 신입 남자 변호사, 난동 의뢰인, 첫 의뢰인 등 남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전형적인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각 인물의 서사가 더 층층히 쌓이겠지만, 적어도 등장만큼은 더 말할 수 없을 만큼 평평하다. 그런데도 남지현 연기가 꽤 자연스러워서 설득이 된다.
  • 이혼 팀 대신 기업 팀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가정사라는 것은 너무 쉬운 설정이다. 주인공의 어렸을 적 설정이라고는 하지만 남자 하나를 두고 여자 둘이서 소리치고 싸우고 울고 하는 장면을 2024년에 볼 줄은 몰랐다. 실망스럽다. 우리, 싸움은 당사자끼리 하자. 남자가 바람나면 여자1 vs. 여자2가 아니라 남자 vs. 여자 1, 남자 vs 여자2 싸움이어야 한다. 여자가 바람나도 마찬가지. 동성 둘이 싸워서 이긴다고 바뀌는 게 있나? 이런 설정 자체를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소설에서, 만화에서 더는 쓰지 말자.

괴수 8호

  • 마츠모토 나오야 원작, 미야 시게유키/카미야 토모미 감독
  •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을 중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너무 과한 일본 풍이지만 그에 못지 않은 게 징징대는 친구 캐릭터였다. 끊임없이 울고 소리 지르는 소음을 견디기 힘들었다. <괴수 8호>도 비슷하다. 주인공이 필요 이상으로 소리를 지르고 과도하게 개그 연기를 한다. 불과 몇 장면 전에 30대라고 세상 다 산 것처럼 굴더니 이내 과잉반응 개그 소음을 내뿜는다. 앞으로 성장 서사를 위한 밑밥이라고 해도 피곤하다.
  • <괴수 8호>는 다른 작품을 노골적으로 연상시킨다. 괴수 전담 조직, 육상 자위대와의 연합 작전 등 기본 얼개부터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떠오른다. 괴수의 생체 조직을 이용한 전투 장비, 괴수의 등장과 전투씬, 괴수의 피가 튀는 장면을 보면 혐의는 확신이 된다. 작화는 수준급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베낄 정도면, 초등학교 시절 추억을 가슴에 담고 그녀 옆에 서겠다는 것 외에 뭔가 대단한 의지와 반전이 있어야 차별화가 될텐데, 과연?
  • 결국 인물이다. <괴수 8호>에는 감정 이입해서 응원하거나 욕하고 싶은 인물이 없다. 유명인 아버지에게 인정 받고 싶은 안하무인 소녀, 꺾이지 않는 의지로 나이(그래봐야 30대 초반) 핸디캡을 극복하며 오늘도 과잉 몸개그를 날리는 아저씨, 그 짧은 기간 같이 일했다고 가족보다 더 살갑게 비밀을 숨겨 주고 돌봐주는 속 깊은 소년. 뭐야 이게!

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글, 문학동네 출판, 2020년
  • 궁핍한 삶의 극한까지 밀어붙인 적나라한 묘사가 오히려 너무 감정이입이 돼서 읽기 힘들다. <손톱>이라는 단편이 특히 그렇다. 굳이,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런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 대단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한 장, 한 문단, 한 문장 읽기가 이렇게 힘들다면. 분명 이 작품을 쓰는 과정도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이다.

팩트 체크의 기초

  • 브룩 보렐 글, 신소희 번역, 유유 출판
  • 팩트 체크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내 말만 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래서 흥미롭게 눈을 반짝이며 첫 장을 넘겼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팩트 체커의 역할이 방대하다. 데스크, 취재기자, 교정/교열 기자의 전문 역량을 거의 모두 필요로 한다.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고 의심하고 확인한 후 쓴소리를 하는 직업이면서도 조직내 기존 직군과의 관계를 망치지 않고 협업에 능해야 하고 한다. 이게 가능해? 과거에 내가 쓴 글 하나를 AI에 주고 “문장 단위로 팩트 체크를 해줘”라고 입력했다.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최고보다 더 정교한 팩트 체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출처를 찾고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것에 있어서 이보다 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이 책의 저자 브룩 보렐은 아직도 팩트 체커를 하고 있을까? 아직도 팩트 체커를 길러 내는 교육을 하고 있을까?

러브 미

  • 조영민 연출, 박은영ㆍ박희권 극본, 서현진ㆍ장률 등 출연
  • 1화 첫장면은 명백하게 잘못된 선택이다. 인물의 처지와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이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아마도) 남주와의 첫 대면은 더 잘못된 선택이다. 야밤에 뒤를 쫓아오는 설정이라니. 여기까지 보고 스톱 버튼을 눌렀지만, 이걸 어떻게 인물의 성격 혹은 피지 못할 사정이었다는 식으로 포장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