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명작] 폭싹 속았수다

폭싹 속았수다

아이유(들)가 다했다.
  • 넷플릭스 드라마 총 16화
  • 김원석 연출, 임상춘 극본, 아이유ㆍ박보검ㆍ문소리ㆍ박해준 등 출연

2025년 <올해의 드라마>를 일찍감치 (나혼자) 예약했다. 장점으로 꽉찬 드라마다. 많은 드라마가 줄거리만 혼자 달려 나가거나, 스타가 멱살 잡아 끌고 가거나, 그것도 아니면 말초적인(야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극으로 보는 사람을 얼얼하게 만들어 버린다. 반면 이 작품은 극본, 화면, 연기, 편집, 음악이 고르게 살아 있다. <우리들의 블루스>처럼 크고 작은 캐릭터가 함께 살아 숨쉬며 진행되는 리듬과 톤이 너무 좋다. 지독한 악당도, 대책 없는 선비도 없는 실제 우리 삶을 닮았다. 여기에 엄마와 아빠라는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하는 치트키까지 있으니,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다.

하나씩 보자. 이 작품엔 자극적인 묘사가 없다. 일생을 다루는 긴 호흡의 드라마 특성일 수도 있지만, 말초적인 연출을 노골적으로 자제했다. 양관식(박보검)이 부상길의 배를 타면서 매질을 당해 온몸에 멍이 들었지만, 실제 화면에 노출된 것은 정강이가 걷어 차이는 장면이 전부다. 양동명은 폭풍우 속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화면에는 주검을 안고 울부 짖는 오애순(아이유)이 전부다. 여느 드라마였다면, 연장을 이용해 주인공을 때리고 아이가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장면을 생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이후 더 큰 반향을 위한 상투적인 기술인데, 이 작품엔 그런 게 없다. 이 드라마의 가장 잔인한 장면이 권계옥이 오애순의 뺨을 때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조차 극 후반부에 어렵게, 어렵게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는 설정으로 이어진다. 말초적인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아도 드라마의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그동안 다른 드라마가 얼마나 게으르고 안이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화면이 정말 예쁘다. 우리나라 곳곳에 이렇게 예쁜 곳들이 많았나. 아마도 상당한 CG 작업을 통해 배경을 다듬어 만든 것이겠지만, 그동안 TV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고화질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점점 더 TV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댄다. 연기도 빈틈이 없다. 다른 드라마라면 주연이었을 연기자들이 조연으로 빼곡하게 등장한다. 매회 웃고 울고 소리지르고 뛰어다녔을 아이유가 가장 눈에 띄지만, 조연들의 색깔이 총천연색이다. 물론 극본의 힘이지만 결과적으로 해녀, 선주, 철부지 등 캐릭터들이 모두 살아 있다. 빈틈이 없다, 거를 타선이 없다는 말은 이 작품에 딱 맞다.

편집도 이 작품의 장점이다. 처음에는 약간의 힌트만 주고 극을 진행시킨 후 꼭 필요한 순간에 다시 플래시백으로 당시 상황을 더 자세히 보여주면서 점차 더 넓은 시야, 더 깊은 맥락으로 인물과 사건을 볼 수 있게 한다. 결국 보는 사람은 더 몰입해 궁금하고 마지막엔 아하, 흑! 공감하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편집이 말하려는 메시지다. 선의로 시작된 작은 배려, 묵묵히 일상을 지킨 성실함이 사람 사이에서 오랜 시간을 무심하게 흐르고 흐르다가 삶의 벼랑 끝 아슬아슬한 순간에 기적처럼 돌아온다. 각자도생의 시대, 서로 대화하기 조차 꺼리는 시대가 돼 버렸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사람과 관계에 대한 신뢰가 왜 중요한지를 말한다. 굳이 여기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조금만 더 따뜻하게 다른 사람을 대하는 친절의 가치를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정도라고 해도, 이 작품은 이미 올해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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